아비 베르의 권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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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81년 봄 파리의 쿠볼홀에서는 「지스카르」당시 프랑스대통령부처가 참석한 가운데 17세기 풍의 장중한 의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이날의 주인공은 고희를 훨씬 넘긴 「마르그리트·유르스나」여사(73세). 3백년전통의 아카데미 프랑세즈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회원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그녀는 「이브·생·로랑」이 디자인한 은구슬이 달린 아비 베르를 입고 옛날 기사들이 쓰던 긴칼을 허리에 찬채 쿠볼홀 중앙의 연단에 올라섰다. 칼을 찬 모습이 다소 어색하긴 했지만 그래도 관례대로 연설을 시작했다. 연설내용은 연전에 작고한 「로제· 카이와」의 생애와 사상.
아카데미 프랑세즈는 전통적으로 신임회원이 되려면 자기에게 자리를 물려준 전임자의 사상과 생애를 평가하게 되었다. 「카이와」는 바로 「유르스나」여사의 전임회원으로 유네스코 사무총장을 역임한 저명한 인류학자며 문학자.
연설이 끝나자 「지스카르」대통령은 객석에서 일어나 박수로 새 회원의 탄생을 축하했고, 르몽드지는 3∼4면에 걸쳐 이 연설문을 전재했다.
아비 베르는 초록색 제복이란 뜻이다.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 되려면 누구나 입회식에 이 옷을 입어야 하기 때문에 이 말은 바로 회원의 호칭처럼 되었다.
전 세계인으로부터 「지성의 상징」으로 존경을 받는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회원은 이런 의식과 절차를 밟고 탄생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학·예술원은 어떤가. 발족한지 30여년이 지나도록 「관제」라는 틀 속에서 지적, 예술적 구심적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뿐 아니라 새 회원이 추천될 때마다 선정과정에 말썽이 꼭 따랐다. 그래서 국민적 존경은 차치하고 때로는 「양로원」이란 소리를 듣기도 했다.
물론 거기에는 예산의 뒷받침이 없어 회원들이 연구, 창작활동을 할래야 할 수 없었던 사정도 있었다.
문교부는 뒤늦게 학· 예술원의 권위를 높이고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회원의 직선제를 포함한 대폭적인 개편 안을 마련했다. 무엇보다도 「관의 입김」을 없앤 것은 잘한 일이다.
모처럼 우리의 학·예술원도 지성과 예술의 요람소리를 듣게 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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