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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이냐…중국이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지금까지 우리가 통상 중공이라고 불러왔던 대륙중국의 칭호를 중국으로 해야된다는 의견들이 발표되고있다.
중공이란 표현은 중국공산당의 약칭으로서 국호로는 옳지못하다는 지적이다.
사실 10억 중국대륙인구중 공산당원은 4천여만명에 지나지않는다.
따라서 중국대륙 사람들을 모두 「중공인」으로 호칭한다거나 중국대륙의 모든 분야를 「중공」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매스컴들이 지금까지 통상 사용해온 「중공선수」「중공예술」「중공문학」「중공경제」등은 엄밀히 따지자면 「중국」(중화인민공화국)으로 부르는 것이 옳다.
대륙중국인들도 한국이 그들을 중공으로 부르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
86년9월 서울 아시안 게임당시 중공선수단의 한 고위임원은 한국매스컴들이 그들의 국호를 「중공」으로 표현하는 것은 「비우호적인 처사」라며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기자는 당시 그들의 이같은 항의속에는 「중공」이라는 표현이 두개의 중국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하는 의미까지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아시안게임 당시 그들의 공식 국호는 「중화인민공화국」(중국)으로 입장식 팻말이나 시상식등 공식 문서에는 반드시 그렇게 사용했으나 매스컴을 포함한 광범위한 계층이 여전히 「중공」으로 사용했다.
중국대륙에서 개최한 스포츠게임이나 학술회의에서 그들은 우리의 공식명칭을 대부분 「한국」으로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사례나 이치를 잘 알면서도 우리 매스컴이나 관계자들이 그들의 국호를 「중국」이 아닌 「중공」으로 호칭해온것은 「분단이데올로기」의 유산이 짙기는 하지만 또다른 뜻을 담고있다.
그것은 한·중 (공) 양국이 외교관계를 맺지못하고 있는데서 오는 합법성에 대한 회의의 뜻도 담겨있으며 특히 상호 형평의 원칙이라는 틀 때문이다.
인민일보나 경제일보등 「중공」에서 발행되는 신문은 우리의 국호를 꼭 「남조선」으로 쓰고 있다.
이는 그들이 북한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또는「북조선」으로 부르는 것에 연유한다.
「중공」매스컴들은 이 「남조선」이라는 칭호에 예외를 두지않고 있을뿐아니라 심지어 홍콩에서 발행되는 문회보·대공보·신만보등 「중공계」신문들도 우리 국호를 대한민국 또는 한국으로 표기한 적이 없다.
홍콩에서 발행되는 이들 중공계 신문들이 극히 예외적으로 제목에만 「남한」이라고 쓰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한국특파원들이 홍콩에 본격적으로 상주하기 시작한 85년 한 중공계신문이 본문기사는 「남조선」이라 하면서도 제목을 「남한」으로 뽑은 적이 있었다.
당시 한국특파원들은 이러한 변화(?)에 의미를 부여하는 기사를 송고했으나 정작 그렇게 쓴 신문담당자는 후일 『제목의 자수 제한때문에 불가피한 것이지 다른 뜻은없다』고 설명했으며 그런 원칙은지금까지도계속되고있다.
사실 우리정부는 그들의 국호를 중화인민공화국 (중국)으로 부를테니 우리 국호도 대한민국 (한국)으로 불러달라는 신호를 여러차례 보냈으나 번번이 거절당하곤 했다.
그런 대표적인 사례중의 하나가 87년1월 홍콩에서 개최된 한·중(공)양국간 「전자회담」 이다.
양국 관계당사자들간에 진행된 이 회담은 북한과 자유중국을 의식해 회의자체가 개최됐다는 사실조차 철저한 비밀에 부쳐졌다.
이 회담은 중공측이 86년아시안게임 당시 한국이 사용, 개발한 전자기술과 시스템을 배우자는 것이어서 한국은 베푸는 위치에 있었다.
회담은 순조롭게 진행됐으나 막상 합의서 서명당사자의 칭호문제때문에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수개월이나 연기됐다.
우리는 서명인을 「중화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으로 하자는 것이었고 그들은 「한성」(서울의 중문표기) 과 「북경」으로 하자고 고집하는 바람에 다른 내용은 모두 합의를 하고도 회담은 일단 결렬됐다. 이 회담은 국호문제때문에 몇개월을 끌다가 결국 서명인을 「Korea, Seoul」「China Beijing」으로 하는 선에서 타협을 보았다.
시회당은 경제적 측면에서 보자면 우리가 그들을 도와주는 것이었으나 그들은 국호문제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 아쉬운 입장이면서도 그들의 주장을 밀어붙였던 것이다. 이처럼 국호문제는 민감하고도 극히중요한의미를갖는다.
지난 대통령선거때 노태우대통령후보가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이라고 부른 것은 분명 「파격적」인 것이었으며 기자에게는 당혹스런 것이었다.
이는 70년대 김용식외무장관이 석유탐사를 위한 대륙붕광구분쟁을 해결키위해 중화인민공화국과 협의할 용의가 있다고 언급한 이래 최고위 정치지도자로서는 최초의 발언인 것이다.
노후보의 발언이 고도의 정치행위에 속하는 것이라고 해석할수도 있으나 관계전문가등의 의견과 여론을 어느정도 참작, 수렴한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지않다.
국제법적으로 「중공」은 아직 우리와 적대관계에 있으나 시대의 흐름은 냉전시대의 논리에서 탈피, 긴장완화와 양국간 실질관계가 상당한 속도로 증진돼가는 단계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중공이냐, 중국이냐하는 칭호문제는 입장과 성격에 따라 달라질수 있다.
학문적 입장에서 학계는 「중국」으로 표기할 수도 있고 상호평등이라는 원칙등에 근거해 언론은 「중공」이라고 표기할 수도 있다고 본다.
이 문제에 대해 각계가 더욱 진지한 자세로 연구·검토해야 한다는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으나 이 시점에서 어떤 통일된 표기에 지나치게 집착할 필요는 그리 절실치 않은것 같다. 【박병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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