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9)"바쁜사람 병없다"|이시형 <고려병원·신경정신과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노이로제만큼 증상을 상세히 이야기하는 환자도 별로 없다. 의학서적에도 그렇게 자세한 기록은 되어있지않다. 이들에겐 그냥 소화불량이 아니다.『고기먹은후 3분이 지나면 갈비뼈 왼쪽으로 당기는듯한 기분이 들다가 2분후엔 오른편아래로 내려간다. 그때 트림이 세번나고…』속을 들여다본듯 자세하다. 음식과 위장 상태등에 관한 상관관계를 도표로 그려오는 환자도있다. 그 연구 관찰법이 얼마나 정교하고 과학적인지 의학논문같다. 감탄이 절로 난다.
그러나 문제는 다음이다. 그 하나하나의 현상에 대해 설명을 요구한다.
아픈건 왜그러냐, 트림은, 꿈틀 할때는 무슨 일이…끝이 없다. 의사는 할말이 없다. 멍하니 쳐다보고 있노라면 환자가 나름대로의 설명을 시작한다. 이건 아주 의학강의다. 어디서 배웠는지 제법 근거있는 설명도 한다. 주객의 전도다. 진료비를 받을게아니라 의사가 수강료를 내야할 판이다.
일이 이쯤되면 진단은 아주 명백해진다. 이야말로 전형적인 신경성이다. 특별한 검사를 해볼 필요도 없다. 그토록 꼼꼼히 신경을 쓰고 있으니 병이 안날 수가 없다. 증상에 관한 연구도 많이하고 아는 것도 많다.
이게 문제다. 그러고 앉았으니 병이 안생길 수도 없고, 또 나을 수도 없다. 밥한술 넘어갈 적마다 어디쯤 어떻게 내러가고 있는가를 생각하니 소화가 될 까닭이 없다. 바짝 긴장되어 있으니 소화는 커녕 내려갈수도 없다.
너무 생각말고 따지지말자. 음식을 즐겨먹은 이상 소화는 위장에 맡겨야한다. 소화는 머리로 하는게 아니다. 거기까지 신경을 써가며 지켜봐야할 이유가 없다. 그냥두면 잘 될걸 신경을 쓰면 더 안되는게 소화다. 어디 그렇게 할일이 없을까. 넘어간 음식에 신경을 쓰고 앉았으니 실로 딱한 사람이다. 소화가 문제 아니라 당신 인생이 문제다. 바쁜사람 법없단 소리는 그래서 나온거다. 한가로이 앉아 신체의 작은 변화에까지 왜그럴까고 신경을 쓰니 병이 안생길수 없다.
어디 소화만이냐. 신체의 어느 부위 어떤 현상에도 행여 병이 아닌가고 계속 신경을 쓰노라면 대수롭지않은 일도 나중엔 진짜 큰병이 된다.
이말이 믿기지 않으면 다음의 실험을 해보라.
가령 왼편 무릎에 주의를 집중해보라. 괜히 근질근질하고 뻐근한 기분이 든다. 무릎을 움직여본다. 어쩐지 그전 같지않다. 자세히 보니 오른쪽보다 부은 것도 같다. 걸음걸이가 이상해지고 계단오르기가 거북해 진다….
이게 소위「신경성 병」의 발병기 전이다.
멀쩡한 신체기능을 괜히 앉아 신경을 쓰다 진짜 병을 만든 것이다. 인생을 열심히, 바삐사는 사람에겐 적어도「신경성」만은 걸리지 않는다.
그렇게 인생을 살아야한다. 보다 큰 목표를 향해 전력 투구하는 사람에겐 신경성이야말로 사치스런 병이다.
신경성? 당신의 사는 자세를 되돌아보라.
이병은 당신의 의지만이 고칠수 있는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