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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 난동, 창피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야구장난동이 극에 이르렀다. 어젯밤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벌어진 롯데와 해태 경기만 해도 관중 10여명이 다치고 1명이 숨지는 최악의 불상사가 빚어졌다. 숨진 사람은 쇼크사인지, 아니면 흥분한 관중들이 던진 빈 병이나 돌멩이에 맞아 숨졌는지는 더 두고 보아야겠지만 어떻든 창피하고 불행한 일이다.
얼마 전 대전에서는 심판판정에 불만을 품은 관중들이 그라운드에 우르르 몰려나와 심판을 집단구타한 일도 있었고, 인천에서는 관중들이 던진 빈 병에 맞아 상대팀 선수가 다치기도 했다. 또 몇 해 전 어느 도시에선 상대팀버스를 불태우는 불상사도 있었다. 이 같은 관중소동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경기 때마다 흔히 볼 수 있고 순위다툼이 치열한 경쟁 팀과의 대전이나 지역감정이 첨예한 지역일수록 더 심한 것 같다.
팬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팀에 응원과 박수갈채를 보내고 때로는 열광하고 상대팀에 어느 정도의 야유를 보내는 건 경기를 흥미진진하게 한다는 점에서도 유익하달 수 있다. 승패를 떠나 자기 팀을 응원하는 건 자기가 살고 있는 고장을 사랑하는 애향심도 기르고 쌓인 스트레스도 풀어 정신건강에도 순기능을 한다. 또 경기를 통해 페어플레이의 좋은 정신도 본받을 수 있고 상대팀의 멋진 플레이에 갈채를 보내거나 패한 상대팀에 동정을 표하고 위로함으로써 뿌리깊은 지역감정을 해소하는데 크게 기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요즘의 경기장 난동과 흥분하는 관중들의 관전양태를 보면「죽기 아니면 살기」 의 전쟁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승부를 초월해 경기 그 자체를 즐기는 게 아니라 경기내용보다 승부결과가 마치 자신의 이해나 목숨까지 걸린 것처럼 조바심을 태우고 격분하고 있다.
지고 이기는 건 병가의 상사이고 경기의 묘기와 멋진 플레이가 흥미의 대상이 되어야 세련되고 성숙된 관중의 태도다. 마치 지난번 국회의원 선거나 지난날 수준 이하의 여야의 정치격돌처럼 지는 게 곧 파멸을 의미하는 듯한 관중들의 태도는 어느 모로 보나 바람직하지 않다. 타락한 승부제일주의 스포츠윤리로 우리가 어떻게 올림픽행사를 치르고, 경제성장을 자랑하고 선진조국을 운위할 수 있겠는가.
선진 외국에서도 경기장 난동이 없는 건 아니다. 이탈리아와 영국축구팀이 맞붙은 축구 경기장에서는 무려 39명이 숨진 일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는 자국 팀간의 불상사가 아니었고 어디까지나 외국 팀과의 경기에서 있었던 일이다.
품위 있는 관전자세와 세련된 응원이 정착되지 않는 한 우리가 아무리 눈부신 경제성장을 하더라도 문화선진국 국민임을 자처할 수 없다. 프로야구를 출범시킨 목적은 스포츠진흥과 향토애를 고취시키고 지역감정 해소에 있다.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폭력과 무질서가 판치는 저질의 경기장 관전매너는 격을 높여야 한다.
지금처럼 경기장 난동이 되풀이되고 지역감정 해소는커녕 오히려 부채질하는 것이라면 프로야구의 존립마저 재고해야 한다. 근본대책의 수립과 관중들의 자제와 절제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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