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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만원이면 러시아 음악박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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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또 가짜 박사학위를 이용해 실제 교수로 임용된 경우도 두 건이나 있었다고 검찰은 밝혔다. 음대 교수나 강사 임용 시 박사학위 소지자에게 가중치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수 음악인이 '학위 장사'의 유혹에 빠졌다고 검찰 관계자는 전했다. 이에 대해 음악계에서는 "연주력이 생명인 전문 연주자들까지 학위를 돈으로 산 것은 학교에 자리를 잡아야 레슨 등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척박한 국내 음악계의 현실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 박사는 1인당 2000만원 이상=검찰에 따르면 불구속 기소된 C대 박 교수는 2001년 3월 도씨에게 2000만원을 주고 극동국립예술아카데미의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2004년 3월 이를 이용해 C대학의 교수로 임용됐다.

불구속 기소된 K대 이모(44) 강사는 2002년 2월 가짜 박사학위를 딴 뒤 도씨의 음악원에서 석.박사 과정 지망생에게 강의를 하고 수강료를 챙긴 혐의다. S여대 심모(48) 강사는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러시아를 방문한 사실조차 없었던 것으로 검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검찰 관계자는 "러시아 교육 당국이 정한 박사학위 과정은 ▶최소 2년 이상 수료 ▶전공 실기와 러시아어 등 이수 ▶논문심사위원회의 논문 심사 등을 거치도록 돼 있다"며 "이들이 가진 학위증은 해당 러시아 대학 총장의 서명만 있을 뿐 학교 당국에는 신고되지 않은 가짜"라고 밝혔다.

검찰은 가짜 학위 취득자에 대해서는 교육인적자원부에 명단을 통보, 파면 등 징계 조치를 의뢰했다.

한편 도씨는 1998년 서울 강남에 음악학원 겸 유학 알선업체를 세워 가짜 학위를 사려는 음악인들로부터 학기당 400만~500만원씩 받는 등 모두 25억원을 챙긴 것으로 검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검찰은 도씨와 공모한 극동국립예술아카데미 총장을 수사하기 위해 러시아 측에 범죄 사실을 통보했다. 검찰은 법무부를 통해 러시아 측에 범죄인 인도를 요청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도씨는 검찰조사에서 "러시아 현지 대학의 분교 형식으로 학원을 운영했다"며 "학위 취득 과정을 간소화하는 과정에서 다소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 내부 공모 없나=검찰은 이름도 생소한 이 대학의 가짜 학위증에 대해 제대로 심사하지 않고 교직원으로 채용한 국내 대학들의 개입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검찰은 학교 관계자들이 이들로부터 돈을 받고 교수 임용을 묵인했는지를 수사 중이다. 검찰은 이 같은 사실이 확인되면 일부 학교 관계자를 배임수재 혐의로 형사처벌할 방침이다. 또 국내의 학위 브로커들이 다른 외국대학과 짜고 '학위 장사'를 벌였을 가능성에도 무게를 두고 수사를 확대키로 했다. 검찰은 지방 모 대학의 강사 모집 과정에서 가짜 박사학위를 받은 지원자가 서류심사에서 1위를 차지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난달 초 수사에 들어갔다. 서울대 음대 문익주 교수는 "예술계 특성상 교수 임용 시 서류심사보다는 공개 오디션을 거치는 등 투명한 임용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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