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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곤의동물병원25시] 우리 개가 산후병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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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스 센스'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본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주인공 브루스 윌리스는 죽은 사람이다. 그러나 자신은 자신이 죽은 것을 모른다. 다른 주인공 소년으로부터 '죽은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어하는 것만을 보기 때문에 자신이 죽은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자신의 이야기인 줄 모른다. 나중에 자신의 죽음을 안 후에야 비로소 그동안 자신이 보지 못하던 변화를 보게 된다.

동물병원을 운영하면서 강아지의 질병으로 내원하는 손님들에게 나름대로 많은 질병에 대한 정보를 전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임신한 개를 데리고 온 고객의 경우엔 '산후병'이라는 병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한다.

산후병이란 어미의 뱃속에서 새끼들이 만들어지고 자라나는 동안 어미 몸 안의 영양의 손실이 극심해 자신의 몸의 기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영양의 수준 이하로 칼슘의 농도가 떨어지는 경우를 말한다. 40도 이상의 고열과 침 흘림, 몸의 강직, 심하게 숨을 헐떡거림 등의 증상을 보인다. 이 증상들은 워낙 특이해 임상 수의사라면 금방 진단할 수 있을 정도다. 빠른 시간 내에 치료를 받으면 그리 어렵지 않게 완치가 가능하지만 방치할 경우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병이다.

얼마 전에 2kg가량 나가는 임신한 개가 병원에 왔다. 곧 분만일이라는데 배의 크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래서 X-선을 찍어보니 여섯 마리쯤의 새끼가 보였다. 그 정도 크기의 개에서 6마리의 아기라니 드문 일이었다. 이런 경우 대개 그 산후병의 증상이 오는 경우가 많다. 그 개는 얼마 후 분만을 했다. 작은 개가 여섯 마리를 낳았으니 산후병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해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위에 적은 산후병에 대한 이야기를 사진 자료와 동영상까지 보여 주며 자세히 알려 주었다. 그 주인 아가씨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눈동자를 반짝이며 열심히 이야기를 들었다. '이만하면 교육이 충분히 됐겠지.' 내심 흐뭇해 하면서 돌려보냈다.

그 뒤 5일 후에 강아지 꼬리도 자르고 가끔 전화해 강아지 잘 크고 있다고 연락도 하고 아주 평화로운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뒤에 갑자기 전화가 왔다. "선생님! 어젯밤에 저희 강아지 죽을 뻔했어요. 흑흑."

"아니 왜요?"

"개가 갑자기 헉헉거리더니 몸이 뻣뻣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밤이고 너무 정신이 없어서 24시간 하는 병원으로 달려갔어요. 그래서 혈액.X-선.초음파 검사 등을 하고 수액 맞고 겨우 살렸어요. 병원에서는 무슨 산후병인가 뭔가라는 병이래요.'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 아닌가.

"그거 지난번에 내가 자세히 얘기해 줬잖아요. 잊어버렸어요?"

그러자, 이 아가씨 하는 말. "그게 우리 개 이야기였어요?"

"……."

그날 밤 집에 가서 아내랑 이 이야기를 하다가 물었다. "왜 그럴까?"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자 하는 것만 보고 듣고자 하는 것만 듣기 때문일 거예요."

하긴 뭐 나도 그런 경우가 있으니 남의 흉만 볼 처지는 아니다.

박대곤 수 동물병원장 (petclin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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