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두더지잡기식 최저임금 미봉책, 뿌리부터 바로잡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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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이 압박과 엄포로 일관되면서 파열음이 그치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그제 최저임금 위반 사업주의 명단을 공개하고, 신용을 제한하겠다고 했다가 하루 만에 입장을 번복했다. 그야말로 촌극이다. 최저임금 위반 사업주를 악덕 업자로 몰고 신용불량자로 낙인찍겠다는 발상에 소상공인들이 반발하고 나서자 고용부가 “체불자 가운데 유죄가 확정된 경우만 공개한다”고 한발 물러선 것이다.

첫단추 잘못 끼우고 밀어붙여선 #현장의 혼란과 후유증만 깊어져 #보완책 서두르는 게 혼란 해소책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으면 마땅히 법에 따라 처벌을 받아야 한다. 최저임금 위반 사업자에게 ‘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이라는 처벌 규정이 마련돼 있는 이유다. 그러나 법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해선 곤란하다. 지난해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근로자는 전체 근로자의 13.6%에 달하는 266만 명이었다. 올해 최저임금 급상승으로 그 대상이 400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이 중에는 분명 악덕 사업자도 있겠지만 영세 사업주도 적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이런 현실을 살피지 않고 두더지 잡기식 미봉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문제는 실효성도 없고 부작용이 양산된다는 점이다. 고용주들이 무인화를 서둘러 인원 감축에 나서고, 택배·경비·청소와 패밀리 레스토랑 아르바이트 같은 취약계층 근로자는 오히려 고용 불안의 위기에 내몰리는 것이 현실이다. 최저임금 인상을 계기로 감축된 일자리만 벌써 수만 개에 달한다는 분석도 잇따르고 있다. 생활물가가 들썩이는 부작용도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근본적 문제는 현실을 외면한 채 당위성과 명분만 내세우면서 잘못된 정책을 강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어제 “보수야당과 보수언론이 최저임금 반대를 위해 영세사업자와 최저임금 노동자 사이에 ‘을 대 을’의 싸움을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600만 자영업자의 고통을 헤아린 소리인지 의문이다.

문 대통령 역시 어제 국무회의에서 “최저임금은 노동자의 최소한 인간다운 삶을 지켜주는 버팀목”이라며 최저임금의 정당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러면서 “소상공인·자영업자가 정부가 마련한 제도를 적극 활용하도록 안내해 주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이는 정부가 3조원의 재정을 투입해 근로자 3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1인당 월 13만원을 지원하는 일자리안정자금을 가리킨 것인데 현실에선 잘 작동하지 않고 있다. 영세 사업장이 이를 이용하려면 4대 보험에 가입해 있어야 한다. 정부는 영세 사업장에 대해 보험료의 최대 90%를 지원해 주지만 이용자도 부담 증가 우려에 따라 기피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는 명분에만 매달리지 말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3년 내 1만원 달성은 속도를 조절하고, 주요 선진국처럼 상여금 등을 최저임금에 산입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지역별·업종별 차등화도 필요하다. 잘못 끼운 단추는 다시 풀고 바로잡는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 정책도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