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기자의 뒤적뒤적] 책 읽는 여성은 정신병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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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슈테판 볼만 지음, 조이한 외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18세기 유럽에선 많은 소설책 표지에 실과 바늘이 끼워져 있었답니다. 책을 읽을 여자에게 자신의 본분을 일깨워주기 위해서였다네요. 그 여성의 본분이란 것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가정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었답니다.

그렇습니다. 여자들이 제대로 책을 읽기 위해서는 유럽에서도 수백 년이 걸렸답니다. 책 자체가 일부 부유한 남성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품이었고, 기껏 읽히는 책이라야 신의 뜻을 전하는 데 그쳤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18세기 이후 문맹 퇴치 운동의 덕으로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여성이 늘어나면서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즐거움과 지식을 주는 책들이 쏟아져 목마른 여성들의 손에 쥐어진 것이죠. 여성들은 책을 통해 자신만의 '사적 공간'과 독립적 자존심, 세상을 보는 자신만의 눈을 갖게 됐습니다. 그리고 가정에 대한 순종이란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 질서를 '위협'하기 시작했으니 남성들의 속이 편할 리 없었겠죠.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소설 '보바리 부인'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을 예로 들며 독서에 몰두하는 것을 일종의 정신병으로 규정했습니다. 스위스의 저명한 서적상은 과도한 소설 읽기를 프랑스 혁명에 이은 그 시대의 두 번째 극단적 행위라고 한탄했답니다. 18세기 말 한 교육이론가는 책이 현실 감각을 잃게 하며 몸을 허약하게 하고, 여자들의 경우 생식기에 영향을 줄 것이라 경고를 하기도 했다니 요즘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

여권 발달사로 읽히는 이 책은 '13세기에서 21세기까지 그림을 통해 읽는 독서의 역사'란 부제처럼 그림해설서 구실도 합니다. 책과 여성을 소재로 한 미켈란젤로.렘브란트.베르메르.마티스.고흐 등 대가들의 명화는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운데 찬찬한 설명도 놓치기 아깝습니다. 간간이 사진도 실렸는데 마지막 장에 실린 메릴린 먼로의 사진은 신선한 충격입니다. 그는 사진 속에서 차분하게 현대소설의 걸작인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읽습니다. 사진가는 그가 실제 이 난해한 작품을 읽었다고 밝혔으니 그를 백치미의 대명사라 한 것도 남성들의 편견 탓인가 봅니다.

그런데 이렇게 힘들게 얻은 권리를 요즘 여성들은 맘껏 행사하지 않는 듯해 안타깝습니다. 한 편지에서 "남자는 여자를 통해 두뇌가 아니라 전혀 다른 곳이 자극받기를 원한다"라고 썼다는 독일 시인 고트프리트 벤이 괘씸해서라도 책 한 권 읽지 않으시렵니까?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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