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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작통권 환수' 서두를 일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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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미 정부는 지난해 10월 한.미안보협의회에서 작통권 환수 논의를 미국에 공식 요청했으나, 미국 측의 '신중' 의견으로 구체적 일정이 유보된 채 향후 협의를 '적절히 가속화'한다는 데 합의한 상태다. 미국은 한국군이 북한의 대남 위협에 대처할 충분한 군사능력을 갖출 때 작통권을 이양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견해다. 이는 지난 2월 이임한 리언 러포트 한미연합사령관의 거듭된 언급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한마디로 한국군의 현 능력과 북한의 대남전략 및 군사적 위협을 고려할 때 작통권 환수는 시기상조이며, 섣부른 환수 추진은 국가안보에 실로 막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칠 사안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작통권 조기 환수의 명분으로 '자주국방'을 들고 있다. 그러나 현 작통권이 한.미 양국의 '공동방위 체제' 하에 있어 '자주국방'에 결코 어긋나는 것이 아님에 주목해야 한다. 마치 연합사 체제에 한국이 예속돼 있는 듯 홍보하는 것은 잘못된 선전 행위다. 사령관이 미군 대장이고 부사령관이 한국군 대장이지만, 실제로는 한.미 국방장관을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합동군사위원회'와 양국 대통령의 공동지휘를 받는 '2원적 작전통제체제'로 돼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국 입장에서는 연합사 체제로 대북(對北) 방위태세의 만전을 기할 수 있다는 큰 이점이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경우에도 회원국들이 작통권을 미군 나토군 사령관에게 위임하고 있다.

한편 작통권이 환수되면 한.미 동맹에 치명적 악영향을 주지 않을까 우려된다. '연합방위체제'가 붕괴되면 유엔군사령부의 해체가 불가피하고, 주한미군 주둔의 필요성도 크게 도전받게 될 것이다. 특히 북한 남침 시 한.미 간 공동대응 연합방위 전략인 '작계 5027' 및 유사시 69만 명에 이르는 미군 증원 계획 등이 변경될 가능성이 있다.

지금까지 북한의 대남 군사위협, 예컨대 핵무기, 생화학무기, 중단거리 미사일, 휴전선 북방의 장사정포, 특수부대의 기습.후방침투 능력에 대해 사실상 주한미군의 첨단 전력으로 방위해 왔고, 향후 이를 우리 힘으로 대체하는 데 오랜 시간과 천문학적 방위비 추가 부담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더욱이 한국군은 미국이 운용하는 첨단무기체계를 관리할 기술적 능력이 부족하고, 전략정보의 100%, 전술정보의 70% 이상을 주한미군으로부터 제공받고 있다. 따라서 작통권의 환수와 이에 따른 주한미군의 성격 재조정은 국가안보 태세의 근본적인 변화와 위험 및 도전으로 연결될 것이다. 한국은 구호뿐인 '자주'를 얻는 대신 치명적 '안보 위험'을 안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그럼에도 이 정부가 '작통권 환수'를 서둘러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혹시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남북 군축 및 북한과의 '합의통일 로드맵'과 연계된 프로그램 때문은 아닌가. 작통권 환수는 언젠가는 이뤄야 할 과제지만, 아직은 여건과 능력이 구비되지 않았으므로 한반도 안정과 국가안보를 위해 보류돼야 한다. 북한이 주장하는 '민족 공조'는 허구의 논리이며 '한.미 공조'를 이간하기 위한 책략에 불과하다. 지금은 한.미 동맹 강화로 국가안보의 내실을 기하면서 북한의 핵 저지, 인권 개선, 그리고 범죄 행위 차단에 국가적 어젠다를 집중해야 할 시기다.

홍관희 안보전략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