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롯데호텔·면세점 가지 마라” … 중국의 사드 표적 보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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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자국민의 한국 단체 관광 금지 조치를 일부 해제한 28일 오후 서울 명동 거리에 설치된 중국어 간판 옆으로 관광객들이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이 자국민의 한국 단체 관광 금지 조치를 일부 해제한 28일 오후 서울 명동 거리에 설치된 중국어 간판 옆으로 관광객들이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이 전면 금지해 온 한국행 단체관광을 8개월 만에 풀었다. 그러나 ‘부분 해제’다.

한국 단체관광 금지 조건부 해제 #유커 많은 상하이·광저우는 묶여 #온라인 상품, 전세기 운항도 안 풀어 #“기업 상대 과한 조치, 대국답지 않다” #일각 “그나마 다행” 단계 해제 기대

중국의 관광 주무 기구인 국가여유국은 28일 베이징과 산둥(山東)성 지역의 오프라인 여행사에 한해서만 한국 단체관광 상품 판매를 허용한다고 밝혔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에 대한 보복 조치의 대표 사례로 여겨져 온 단체관광 금지를 부분적으로 풀어준 것은 다음달 문재인 대통령의 국빈 방중과 지난달 한·중 관계 개선 합의를 의식한 조치로 풀이된다.

하지만 전면적인 해제를 통한 여행·관광 정상화와는 거리가 멀다.

이 같은 부분 해제에는 중국의 외교적 계산이 깔려 있다. 사드 보복이란 고삐를 틀어쥔 채 한국 정부의 사드 관련 조치를 봐 가며 자국의 필요에 따라 ‘죄고 풀기’를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사드 보복 해제를 한국 길들이기의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속내가 엿보인다. 특히 단체관광을 허용하면서도 롯데그룹 관련 업체는 일절 방문하지 못하게 한 조치는 롯데가 사드 부지를 제공한 만큼 제재를 가중하겠다는 메시지다. 대국답지 않은 표적 보복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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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가여유국이 이날 성·직할시별로 대형 여행사 관계자를 소집해 통보한 새 지침에 따르면 3월 15일 이후 전면 금지했던 한국행 단체여행을 베이징과 산둥에 한해 허용했다. 중국인 관광객(유커) 수가 가장 많은 상하이와 광저우 등지의 여행사는 앞으로도 한국 관광객을 모집할 수 없다.

중국관광객 추이

중국관광객 추이

중국 당국은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제약을 뒀다. 비중이 훨씬 큰 온라인을 통한 상품 판매는 여전히 금지했다. 한꺼번에 많은 관광객이 이용 가능한 크루즈 상품이나 전세기 운항도 계속 금지된다. 전체적으로 한국행 유커 숫자를 일정 범위 이하로 제한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가장 문제 되는 대목은 “어떤 항목에서도 롯데그룹과의 협력은 금지한다”고 통보한 부분이다. 여행업계에선 단체관광 일정에 롯데그룹에 속한 호텔 숙박이나 면세점·백화점 쇼핑을 포함시켜서는 안 되고 롯데 계열 여행사와 협력해서도 안 된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중국은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에 대해선 유독 전방위적인 제재를 가해왔다. 중국 내 롯데마트 매장 영업정지는 아직도 풀릴 기미가 없다.

이날 중국의 선별적 보복 해제 조치는 최근 중국 당국이 “사드 반대 입장은 바뀐 게 없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는 것과 맞닿아 있다. 10월 31일 한·중 양국이 공동 발표한 관계 개선 합의문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사드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며, 한국이 풀어야 할 숙제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는 중국이 사드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지 않기로 ‘봉합’했다는 한국 정부의 입장과는 크게 차이 나는 부분이다. 중국은 묶어놓은 양국 교류를 제한적으로 풀어주면서 군사 당국 간 채널을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수준의 사드 해법을 보장받으려 할 것으로 보인다.

8개월간 계속돼 온 유커 금지 조치가 제한적으로나마 해제된 것을 다행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베이징·산둥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풀릴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하지만 업계의 실망감은 작지 않다. 중국에서 영업 중인 여행업체 관계자는 “10·31 합의로 전면 해제가 임박한 걸로 봤는데 크게 실망스럽다”며 “중국이 여행 제한 해제의 범위와 속도를 계속 한국 압박 카드로 사용하겠다는 의사를 드러낸 셈”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롯데 관계자는 “국가 안보와 관련해 협조했는데 민간 기업이 계속 피해를 보고 있다”며 “다음달 문 대통령 방중 이후 롯데에 대한 제재가 풀리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여유국 주재 회의에서는 북한 및 일본 여행 상품에 대한 지침도 전달됐다. 북한 관광 상품은 북한 접경 지역인 랴오닝·지린성의 관광객에 대해서만 허용된다. 북한의 외화수입원을 조이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일본에 대해서는 2018년도 관광객 수가 직전 2년간의 평균을 넘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 중국 국민의 일본 관광 열기가 중·일 관계 개선 속도를 앞질러 뜨거워지고 있는 것에 제한을 가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개인의 자유 의사와 시장의 선택이 존중돼야 할 관광 상품을 중국은 외교 압력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 여유국 조치에서 다시 한번 드러났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서울=김영주 기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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