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세제개편안] 세율 두고 공제만 늘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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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세제 개편안은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를 도입하고 부동산 단기 양도차익에 대해 무거운 세금을 물리는 데 역점을 뒀다.

변칙적인 부의 대물림이나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담은 것이다. 분배와 형평을 강조하는 참여정부의 철학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현금 영수증 카드제 도입이나 신용카드 공제한도를 축소하는 등 세원을 넓힌 것은 '소득 있는 곳에 세금을 물린다'는 원칙에 부합한다.

그러나 세원을 넓혀 세금을 더 많이 걷으면 세율을 낮춰 세금 부담을 덜어줘야 하는데도 세율은 건드리지 않았다. 지난해 세법 개정 때도 근로소득세와 법인세율은 손을 대지 않았다. 정부가 추구하는 '넓은 세원 낮은 세율'중 세원 확대 쪽에만 관심을 둔 것처럼 보인다.

재정경제부 김영룡 세제실장은 "올해는 경기가 안 좋아 내년에 세금이 덜 걷힐 것으로 예상돼 세율을 낮추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세원 확대에 따른 세수 증가 효가가 나타나려면 2~3년 걸린다"며 "세율 조정은 참여정부 임기 내에 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법인세는 지난해 호황에 힘입어 당초 예상보다 4조원 이상 더 걷혔지만, 내년에는 올해 불황을 반영해 3조원가량이 덜 걷힐 것으로 재경부는 분석하고 있다.

반면 국방비나 사회복지 예산, 국채 이자 등 줄이기 어려운 지출과 동북아 중심국가 건설을 위한 인프라 구축 등 돈이 들어갈 곳은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22.7%였던 조세 부담률을 당분간 더 높이지 않고 내년 살림을 꾸려나가기로 했다. 따라서 내년에는 거둔 세금보다 지출이 많은 적자 재정을 편성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부는 세금이 덜 걷힐 것을 걱정하면서도 세금 감면을 줄이는 일에는 소극적이다. 올해 말로 끝나는 79개 감면제도 중 12개 제도만 폐지하기로 했다.

폐지 대상 중에는 세금 감면 규모가 8천3백억원인 '중소기업 특별세액 감면제도'나 '농수협 예금(2천만원 이하) 비과세'등 굵직한 내용이 포함되기는 했지만 정치권이 반대하고 있어 실현 여부가 불투명하다.

국세의 13%(14조원)에 달하는 비과세 감면을 축소하지 않으면서 세수를 핑계로 세율에 손을 안 댄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

부동산 가격 안정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부동산 관련 세금을 너무 무겁게 물린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는 조만간 부동산 보유과세 강화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번 세법 개정으로 단기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까지 강화한다면 세금이 무서워 부동산을 팔지도 못하고 가지고 있지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송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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