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정부·언론은 책임 없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모든 게임은 중독성이 있다. 하지만 리니지는 좀 더 독특하다. 월 3만원씩 내는 유료 게임이지만 게임 자체를 즐긴다기보다 레벨을 올리고 강력한 아이템(무기 등 게임도구)을 얻는 게 주목적이다. 고(高)레벨이 돼야 강한 몬스터를 잡고 더 많은 아데나(사이버 머니)와 양질의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 아데나와 아이템은 쉽사리 현금으로 바꿀 수 있다. 이렇다 보니 '현질'(현금으로 아이템을 사는 것)을 통해 쉽사리 레벨을 올리려는 유혹을 떨치기 힘들다. 좋은 아이템을 얻어 비싼 값에 팔려고 돈 주고 아이템을 사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그 결과 매출 2000억원인 게임을 하기 위해 2000억원 규모의 아이템 매매시장이 생기는 비정상적인 구조가 생겼다. 주민등록번호 도용 피해자가 10만 명이 넘을 것으로 보이는 이번 리니지 사태는 이런 허점을 노린 국내외 악덕업자들의 소행으로 드러나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현금거래가 적발되면 계정을 폐쇄하는 등 이런 폐단을 피하는 노력을 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네티즌들의 생각은 다르다. 매출을 유지하려고 짐짓 알고도 모른 체했다는 것이다. 회사 측은 억울할지 모르지만 정황은 이들에 불리하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W) 같은 온라인게임은 현금 거래가 거의 없다. 낮은 레벨이라도 다양하게 게임 자체를 즐길 수 있고 일부 강력한 아이템은 아예 다른 사람에게 주지 못하게 돼 있다.

그렇다고 이번 개인정보 유출사건이 엔씨소프트만의 책임일까. '리니지 세계 제패'에 들떠서 정부와 언론도 대책마련과 감시를 게을리 한 건 아닐까. 주민번호 수집을 제한하는 등 뒷북을 치는 정부와 뒤늦게 비판에 열을 올리는 많은 언론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김창우 경제부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