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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베이션 노사 “물가 오른 만큼 임금 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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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SK이노베이션 노사가 소비자물가지수에 임금인상률을 연동시키는 새로운 임금협상안에 합의했다. 전년도 물가상승률이 자동으로 당해 임금인상률로 이어지는 식이다. 임금인상 관련, 소모적 논쟁이 지속되고 있는 한국의 노사 현실을 감안할 때 업계에 미치는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SK이노베이션은 이런 내용의 ‘2017년 임금·단체협약 갱신 교섭(임단협) 잠정 합의안’이 조합원 투표에서 가결됐다고 10일 발표했다. 지난 8일 진행된 조합원 투표에서 찬성률은 73.6%에 달했다. 이번 합의안이 적용되는 근로자는 SK이노베이션 및 계열사 소속 생산직원 4000명이다.

물가 연동 방식 국내 최초로 합의 #호봉제 대신 생애 주기별 임금 도입 #직원들 자금 수요 맞춰 인상율 조정

이번 합의로 앞으로 매년 임금상승률은 통계청이 발표하는 전년도 소비자물가지수(CPI)에 연동돼 결정된다. 만약 물가가 10% 오르면 임금도 10%, 물가 변동이 없으면 임금상승률도 0%인 식이다. 올해 임금인상률은 전년도 소비자물가지수인 1%로 결정됐다. 임금상승률은 전년도 물가상승률을 토대로 결정하되 기본급에 포함되는 각종 수당 등은 매년 상황에 맞춰 별도로 정하기로 했다.

임수길 SK이노베이션 홍보실장은 “서로 밀고 당기는 임금 협상 관행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신뢰에 기반을 둔 발전적 노사 관계로 진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며 “네덜란드·벨기에 등 선진국의 공공기관에서만 일부 적용할 뿐 국내에는 처음 도입된 제도”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SK이노베이션 노사는 임금협상에서 첨예하게 대립했다. 노조는 1.7%를, 사용자 측은 전년도 소비자물가상승률인 0.7% 수준을 제시했다. 노조는 2014~15년 임금이 안 올랐기 때문에 높은 인상률을 요구했고, 사측은 여건이 안 된다며 버텼다. 7월 시작한 임금협상은 12월이 돼서도 결론이 안 났다. 노사 간에 입장 차이를 기본급 3000만원으로 환산하면 연 30만원에 불과하다. 이를 둘러싸고 노사는 5개월여나 소모적 논쟁을 벌였다. 결국 노사는 정유업계 최초로 중앙노동위원회에 중재 신청을 했다. 중노위 중재는 법적 구속력을 지닌다. 중노위는 기본급 1.5% 인상으로 이 사안을 매듭지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1%대 임금인상률을 얻어내도 결과적으로는 상처뿐인 영광”이라며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기업의 사회적 역할과 가치 등을 고려한 노사 간의 합의”라고 전했다.

최근 현대자동차 등 자동차 회사를 중심으로 파업이 확산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노사의 이번 합의가 산업계로 확산할지 주목된다.

더불어 SK이노베이션 노사는 임금 체계 개선에도 합의했다. 매년 동일한 비율로 임금이 오르는 획일적인 호봉 인상률을 버리기로 했다. 대신 직원의 자금 수요에 맞춘 생애 주기별 임금 인상을 적용하기로 했다. 예컨대 결혼·출산·교육 등 목돈이 들어갈 때가 많은 30~40대에는 호봉 인상률을 높이고, 자금 수요가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50대 이후에는 상승률을 낮추는 식이다. 임금피크제 성격이 담겨있다. 물론 근로자의 능력과 생산성 등이 반영돼 결정된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은 “미래지향적인 노사 관계 발전을 통해 기업가치 100조원을 달성하는 추진동력이 될 수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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