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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곤의 ‘침묵’ 방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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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영유
양영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양영유 논설위원

양영유 논설위원

살라미(salami)는 얇게 썰어 먹는 이탈리아 소시지다. 쇠고기와 돼지고기 등심살에 소금과 향신료로 간을 맞춰 짭조름하기 때문에 잘라 먹는다. 살라미처럼 하나의 연구 결과를 여러 개로 나누는(slicing) 것을 ‘살라미 논문’이라고 한다. 핵심 논제·구성·데이터는 같은데 장(章)이나 절(節)로 쪼개 여러 곳에 중복 게재하는 수법이다.

2006년 7월 그런 ‘살라미’ 논란이 있었다. 김병준 교육부총리(이하 존칭 생략)가 취임 나흘 만에 의혹에 휘말렸다. 그러자 전국교수노조위원장이던 김상곤 한신대 교수가 “자격이 없으니 사퇴하라”는 성명을 냈다. 직접 창을 들었으니 연구도 많이 하고 윤리의식도 철저한 교수 같았다. 김병준은 표절 청문회까지 자청해 결백을 주장하다 취임 18일 만에 물러났다. 입을 다물면 더 커지고 해명하면 구차해지는 표절의 벽을 넘지 못했다. 학자로서 70~80편의 논문을 썼던 그는 지금도 억울해한다.

김상곤이 경기도교육감이 된 뒤로 몇 번 자리를 한 적이 있다. 인터뷰도 했는데 제목 안 나오는 답변이 많았다. “전교조처럼 교원평가를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평가 방식이 틀렸다”는 식이었다. 입은 무거웠고 노련했다. 학자 냄새는 없었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교육부 장관 후보자에 지명되자마자 발가벗겨졌다. 살라미는 명함도 못 내밀 석·박사 논문 무더기 표절 의혹에 출판사 대표 겸직 교칙 위반, 한·미 동맹 폐기 발언 등 논란이 줄을 잇는다. 그런데 침묵이 금인 양 입을 다문다. 고도의 정치일까, 입이 무거워서일까.

알고 보니 펜은 더 무거웠다. 교수 생활 27년 동안 연구의 펜을 거의 들지 않았다. 석·박사 논문을 합쳐 평생 쓴 논문이 다섯 편도 안 된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과 한국연구재단 등을 뒤져 봐도 그리 나온다. 그나마 한신대 논문집에 실린 것도 살라미다. 서울대 경영학 석사학위를 갖고 1983년부터 한신대에 몸을 담아 2009년까지 교수(박사학위는 92년)를 했는데 어찌 이런 일이…. 논문 안 쓰고 산 인생이 더 나빠 보인다. 만일 논문 수를 잘못 알고 있다면 즉시 공개하시길.

김상곤의 ‘침묵’ 방패는 이제 물러설 곳이 없다. 29일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된 김병준은 “상대할 가치도 없다”며 창을 접었다. 하지만 김상곤을 향한 여론의 창은 더 날카로워지고 있다. 표절과 이념 편향보다 더 심각한 건 자질이다. 연구와 담을 쌓아온 아날로그 폴리페서, 포퓰리즘 정치가에게 인공지능(AI) 시대의 아이들을 맡길 수 있나. 그의 입이 궁금해진다.

양영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