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외화 극장이 모자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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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극장을 잡아라」-. 외국영화가 수입 자유화되자 너도나도 턱없이 많은 외화를 수입한 영화사들이 상영할 극장이 모자라 치열한 극장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올 들어 공륜의 심의를 받고 수입된 외화는 4일 현재 모두 88편. 이 가운데 그동안 개봉된 것은 56편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32편은 개봉할 극장을 찾지 못해 창고에 그대로 쌓여있는 형편이다.
그런데도 공륜에는 현재 수입신청 외화가 무려 58편이나 밀려있다.
그동안 이들 외화를 들여오는데 쓰인 달러만도 1천3백만 달러에 이른다. 연말까지는 지난해 7백만 달러의 2배를 훨씬 넘어설 전망이다. 수백만 달러가 불필요하게 낭비되고 있는 셈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국영화는 작품이 모자라 극장쪽에서 애를 태우고 있다.
올 들어 현재까지 개봉된 한국영화는 모두 70편. 그러나 올 들어 만들어진 새 한국영화는 63편밖에 되지 않는다.
극장에서는 새로 만들어진 한국영화를 모두 상영하고도 모자라 전에 만들어 남아있던 영화나 리바이벌영화까지 상영했으나 앞으로 상영할 새 작품이 부족한 실정이다.
외화는 흘러 넘치고 한국영화는 모자라는 안타까운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영화사들이 한국영화 제작도 소홀히 한채 외화수입에만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외화수입의 문이 활짝 열리자 영화사들은 경쟁적으로 외화를 수입하는데 혈안이 되어왔다.
그동안 수입된 외화는 88편이지만 수입을 신청했던 외화는 무려 1백86편이나 된다. 공륜은 그중 1백42편을 심의해 54편을 여러 이유로 수입을 막았던 것이다.
지난해 수입된 외화가 모두 51편인것을 보면 그 열기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수입외화가운데는 미국영화가 50여편이나 되고 홍콩·대만영화가 20여편에 이른다.
서로 경쟁적으로 수입하다보니 값싼 저질 오락영화도 많이 들여왔다. 개중엔 현지에서 아예 비디오용으로 날림 제작한 엉터리영화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바람에 극장쪽에선 오히려 『영화는 많지만 상영하고 싶은 수준 작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불평이 나오고 있다.
극장업계에선 우리나라에서 소비할 적정 외화수를 연간50∼60편 정도로 보고있다.
공륜은 매일 밀려드는 수입외화를 심의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수입문호를 개방한 마당에 영화사들의 요구를 막을 뾰족한 방법은 없어요. 하지만 영화사들도 이제 외화를 들여오면 무조건 많은 돈을 벌수 있다는 환상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이영배위원장은 적잖은 영화사들이 외화를 들여왔다가 흥행에 실패해 도산 위기를 겪고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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