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판 아우슈비츠’ 감옥서 시신 태워 대량 학살 은폐한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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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시리아 정부가 대량 학살을 은폐하기 위해 화장장을 건설해 시신을 몰래 처리한 것으로 보인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 국무부, 군 교도소 위성사진 공개 #화장장 추정 건물만 지붕 눈 녹아 #반군·민간인 고문 재판 없이 살해 #2011년부터 4년간 1만8000명 숨져

WP에 따르면 수도 다마스쿠스 인근의 세드나야 군 교도소 안에 화장장이 있으며, 시리아 정부는 이곳에서 처형된 수감자의 시신을 비밀리에 처리했다. WP는 “대량 학살과 시신 소각이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연상시킨다”고 보도했다.

스튜어트 존스 미 국무부 차관보 대행도 이날 브리핑에서 “시리아 정부가 교도소에서 자행한 대량 학살을 숨기기 위해 화장장을 지은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시리아 정부는 반군과 비무장 민간인을 똑같이 취급하고 있다”며 “조직적으로 이들을 납치해 고문·감금하고 있으며 수천 명을 재판 없이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의 잔학한 행위는 러시아와 이란의 전적인 지원 하에 이뤄졌다”고 비판했다.

미 국무부가 15일 공개한 시리아 다마스쿠스 인근에 있는 세드나야 군 교도소의 위성촬영 사진(왼쪽). 오른쪽은 교도소 내 화장장으로 추정되는 시설물. 미 국무부는 “시리아 정부가 대량 학살을 숨기기 위해 화장장을 건설해 시신을 처리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로이터·AP=뉴스1·뉴시스]

미 국무부가 15일 공개한 시리아 다마스쿠스 인근에 있는 세드나야 군 교도소의 위성촬영 사진(왼쪽). 오른쪽은 교도소 내 화장장으로 추정되는 시설물. 미 국무부는 “시리아 정부가 대량 학살을 숨기기 위해 화장장을 건설해 시신을 처리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로이터·AP=뉴스1·뉴시스]

미 국무부는 교도소 수감시설 옆에 화장장으로 추정되는 시설물의 위성촬영 사진도 공개했다. 지난 1월 15일 촬영된 사진에서 교도소 내 건물 지붕은 눈으로 덮여 있지만, 화장장으로 추정되는 시설물 지붕에서만 유독 눈이 녹아 있었다.

존스 대행은 비정부기구의 자료를 인용, “2011~2015년 시리아 정부가 납치·구금한 사람은 최소 6만6500명에서 11만7000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국제앰네스티는 같은 기간 1만8000명의 구금자가 사망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시리아인권네트워크는 지난 3월 “약 10만 700여 명이 세드나야 군 교도소에 구금돼 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정부군에 붙잡힌 반군·민간인 등은 시리아 전역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데, 군에서 운영하는 세드나야 교도소는 특히 악명이 높다. 집단 교수형을 목격했다는 수감자도 있다. 국제앰네스티는 “인간 도축장”이라고 표현했다. 존스 대행은 여러 소식통을 인용해 “알아사드 정권은 세드나야 교도소에서 하루에 50명을 처형한다”며 “5명 수용 감방에 최대 70명을 집어넣을 정도로 최악의 환경”이라고 말했다. 존스 대행은 “시리아 정부는 민간인과 반군에 대한 모든 공격을 중단해야 한다”며 “러시아도 시리아 정부가 이에 응하도록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엠네스티 “인간 도축장” … 집단 교수형 목격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동안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지 않는 모양새를 취하다가 시리아 정부가 지난달 민간인·어린이에게 화학무기 공격을 한 것을 계기로 시리아 내전에 강경 대응과 개입 기조로 돌아선 상태다. 지난달 6일엔 시리아 공군기지에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을 퍼붓기도 했다. 미국은 시리아 정부의 최대 후원자인 러시아를 향해서도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일 백악관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 세르게이 키슬랴크 주미 러시아 대사를 만나 시리아 문제를 논의했다고 WP는 전했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도 이들과 만나 “무자비한 공격을 멈추도록 시리아 정부를 압박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밝혔다.

존스 대행은 이와 관련 “라브로프 외무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목적은 우리(미국)와는 다소 달랐다”며 “러시아가 이란·터키 등과 구축 중인 시리아 내 ‘안전지대(긴장완화지대)’구상을 지지해달라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미국은 러시아 주도의 이 구상을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WP는 전했다. 존스 대행은 “과거 정전협정들이 실패한 것을 보면 우리는 이 구상도 회의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러시아·이란·터키와 시리아 정부 간 휴전 협상은 최근까지도 계속 있었지만,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지지 않았다. 시리아 정부군·반군 측이 번번이 휴전 약속을 깨고 공격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유엔에 따르면 내전 발발 후 시리아에선 약 40만 명이 사망했다. 또 인구의 절반인 약 2200만 명이 시리아를 탈출해 난민으로 떠돌고 있다.

홍주희·백민정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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