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피치] 188. 박찬호와 사발면 세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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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박찬호가 달라졌다. 아직 뚜껑도 열지 않은 시점이라 화려한 재기 운운하기엔 이르지만 분명 나아졌다.

가장 큰 변화는 볼넷이 사라졌다는 것. 4경기 13.2이닝, 57명의 타자를 상대로 볼넷이 하나도 없다. 시범경기라 타자들이 볼넷을 기다리기보다 적극적으로 방망이를 휘두르는 경향도 없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투구 내용이 달라진 건 확실하다.

박찬호의 변화는 어디서 비롯됐나. 부상에서 회복해 강해진 허리, 충실한 겨울훈련을 통한 자신감, 재기에 대한 강한 의지, 투구 패턴을 투심(two seam) 패스트볼 위주로 바꾼 것 등 여러 가지다.

그 가운데 오늘 '인사이드 피치'가 말하고 싶은 건 바로 '생각의 변화'다.

박찬호는 생각이 많은 성격이다. 사소한 것도 깊이 생각하고, 미리 생각한다. 좋게 말하자면 신중하고 사려 깊고, 안 좋게 말하면 소심하고 의심이 많다. 그런 성격이 마운드로까지 이어질 때 그 결과는 부정적이다.

투수가 타석에 타자를 두고 자기 공에 대해 이것저것 생각이 많고 예상 결과에 민감하다면 보는 이에게 믿음을 주지 못한다. 일부 야구전문지에서 "투지가 모자란다"고 평가하는 부분이 그런 것이다.

잠깐 딴 얘기를 하자면 투수로서 바람직한 성격은 영화 '넘버 3'에 나온 '무대포 정신'일 것이다. 송강호가 작고한 재일 무도인 최영의 흉내를 내면서 "너 황소야? 나 최영의야"라고 말하는 그 부분, 그 성격 말이다. 가장 가까운 예? 아마 구대성이 아닐까.

박찬호는 그런 지적을 받을 때마다 자기도 성격을 무던하게 바꾸려 마음먹지만 잘 안 된다고 했다. 이번 캠프 초반 박찬호와 밥을 함께 먹다가 그의 생각이 바뀌게 된 적절한 상황이 생겼다. 고기를 한참 굽던 박찬호는 곁에 놓은 마늘과 김치찌개를 보면서 "오늘 이렇게 먹었으니 내일 운동할 때 내 몸, 땀에서 냄새가 날 테고 그러면 미국 애들이 싫어할 텐데…"라고 걱정했다. 그러다가 스스로 "아차!"했다. 뭔가 깨달았다는 표정이었다.

바로 그거였다. 냄새 나고 주위에서 싫어하는 건 나중이고, 그걸 미리 걱정해 찡그리고 불안해하면서 먹을 필요가 뭐 있느냐는 것. 타석에 타자가 들어왔을 때 무얼 던질지 결정하고, 자신을 갖고 포수의 미트만 보고 던지면 되지 이걸 던져 볼이 되면 어떡하나, 타자가 안타를 치면 어떡하나, 다른 걸 던질까…. 이래서는 스스로 불안해지고 흔들린다는 것이었다.

문득 그는 "요즘도 라면 자주 드세요?"라고 내게 물었다. 그는 주위에서 몸에 안 좋다고 해서 밀가루 음식을 멀리한 지 꽤 됐다고 했다. "맛있다고 생각하고 먹으면 전부 몸에 좋더라"는 대답에 그는 또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헤어지기 전 그는 한국식품점에 들러 간식거리로 사발면 세 개를 샀다.

박찬호는 그렇게 생각과 음식에 단순해지고 무던해졌다. 사소한 변화지만 긍정적이다. 생각을 바꾸면 태도가 바뀌고, 태도가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고 했던가. <텍사스에서>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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