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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류청론|관훈클럽 토론과 정치인의 말|언어의 진정성 아쉬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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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5면

드문드문 TV녹화방송을 보기도 하고 주간지에 게재된 전문을 읽기도 하면서 관훈클럽의 대통령후보초청 토론회에서 내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주목한 부분은 우리의 정치 지도자들이 말을 어떻게 하는가에 대해서였다.
나의 관점은 그분들의 화술이 얼마나 달변이고 유식하며 재치있는가라는 점보다 그런 점들을 포함하여 그 말들이 얼마나 정직한가, 얼마나 논리적인가, 또 얼마나 실천적인가 하는 데에 있었다. 말이 정직해야 한다는 것은 그 발언자의 도덕성과 함께 자기신뢰감의 표현이 될 것이며, 논리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그의 인식의 깊이와 사고의 정연성을 알려줄 것이고, 실천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이상과 실제를 조화시키는 통치자로서의 구체적 비전을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정직성은 후보의 사적·공적 경력과 신상에 대한 솔직한 진술로 나타나며, 논리성은 우리 사회의 갖가지 문제적 일들에 대한 관심과 견해로 드러나며, 실천성은 정책적 프로그램으로 제시될 것이다.
물론 누구에게든 다같이 정직성·논리성·실천성이라는 언어의 진정성이 요구되고 있겠지만 민주주의를 실현하겠다는 이 단계의 대통령 후보들에게는 그것이 특히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탄환이 아니라 투표로써 권력을 획득하는 민주주의에는 말의 문화, 말의 성실성·설득력·수행력이 기초가 되는 것이며, 그래서 이 체제의 골격이 되는 「대의」란 용어는 우리말이든 서구어든 「말한다」의 뜻을 품고 있는 것이다. 대권 경주자의 정치언어가 얼마만큼 리얼리티를 갖고 있는가는 우리 정치문화의 수준이 어느 높이쯤 올라있는가를 가리키는 것이며, 그 리얼리티를 정확히 파악하는 정도가 우리 국민들의 민주적 역량을 가늠케 해줄 것이다.
관훈클럽의 연속된 토론회들에서 느낀 나의 소감은 그러나 반드시 흡족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 미흡감의 상당 부분은 후보들에게 자신의 식견과 전망을 자부하도록 열어놓기보다 방어적으로 변명하도록 추궁하는 질문들에 집중되며, 그래서 정직성 이상으로 중요한 논리성과 실천성의 시험에는 소홀하게한 질의자들에게 넘겨주어야 하겠지만 1차적으로 답변자 자신들의 책임이 회피될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후보들이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그들이 저질렀다고 믿어지는 과오와 약점의 해명이었는데, 그것은 여자 스캔들로부터 12·12사태에 이르는 갖가지 기습적 소재들이었다. 그런데 후보들은 한두가지 외에는 대체로 강력히 부인하거나, 얼버무리거나, 혹은 딴청을 부리는 듯도 했다.
나는 사실의 진위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후보들의 대답들에서 그 불투명성으로 회의되는 대목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내 생각으로는 진정한 과오는 과오 그 자체에 있다기보다, 그 과오에 대한 무지에 있는 것인데, 과오의 부인과 반성의 회피는 앞으로 과오를 확대재생산할 가능성이 있거니와 지금 당장 유권자들의 신뢰감 획득도 어려울 것이다.
논리성과 실천성을 드러낼 많지 않은 답변들에서도 후보들의 말은 큰 설득력을 주지 못하고 있다. 가령 질의받은 주제에 대해 『지금 깊이 연구하고 있다』면서 딴 화제로 슬쩍 돌린다거나,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분석력을 보이기보다 단언적인, 그러나 주관성으로 비약하는 대답으로 응수하는 것이 그렇다.
또 예컨대 『내가 대통령이 되면 오랜 경험으로 얻어진 감으로 할 것』이라는 식의 답변은 후보의 신념의 표현은 될지언정 합리적 동의를 얻는데 필요한 실천적 구체성의 발언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는 이 토론회에 대한 나의 불만을 부풀려 얘기하면서 후보들에 대한 투정을 늘어놓고는 있지만, 그러나 오늘의 우리 정치문화 수준에 비하면 상당히 호감적인 정도에 이르러 있고, 앞으로 계속될 유세와 TV토론을 통해 더욱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기대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남는 말의 리얼리티에 대한 회의가 납득된다면 그 근원적인 책임은 이 후보들 스스로에게 있기보다 이럴 수밖에 없도록 만든 과거의 정치적 반문화, 반민주적 언어 폭력에 돌려져야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유신시대, 아니 그보다 앞선 5·16, 더 나아가 일제식민통치 이후의 우리 근·현대사 전반에 걸쳐 우리의 정치적 상황은 말로써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총칼로써 휘저어졌고, 언약으로써, 그리고 언어가 지시하는바 문화적 관행으로써 권력이 행사되었다기보다 폭력으로 강요되고 권위주의적으로 지시되는 가운데 그것의 횡포가 자행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벌거벗은 힘이 지배하고 진실이 강제로 은폐되며 정신의 자유가 억압되고 금기체계가 압도하는 사회에서는 말이란 어떤 것이든 정체모를 유언비어가 되고, 언어의 진정성은 낙서와 같은 난센스가 되며, 정직성은 모함 당하고, 논리성은 면박 당하며, 실천성은 맹목화한다.
이러한 언어의 타락과 말의 배반 현상에 대한 고통스런 비유적 증언이 예컨대 「언어사회학서설」이란 부제가 붙은 작가 이청준의 『잃어버린 말을 찾아서』에서 극명히 나타나거니와, 우리가 진심으로 욕구하는 민주주의의 실현은 그 참된 속뜻에서 말의 진정성 회복에 다름아니라는 사실은 거듭 깊이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정치 지도자들이 정직하며 논리적이고 실천적인 말의 진정성 추구를 통해 우리의 민주주의 정치문화를 키워나가기를 바란다. 그 진정성이 획득된다면 당장 유세장의 폭력도 밀쳐질 것이며, 지역간의 반목이 언어 이전의 얼마나 원색적인 감정 표출인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순수한 언어의 진정성」이야말로 광주의 젊은 작가 임철우가 한 소설에서 외치듯 「거대하고 음흉한 폭력의 벽에 대항할 수 있는 최후의, 그리고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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