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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 이상주의의 국가전략을 위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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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첫째 성공요인은 국가 건설, 경제 발전, 안보와 평화의 국가이익을 위한 국제주의전략의 선택이었다. 한국의 리더십은 항상 세계로 나아가는 국가전략을 채택했었다. 이승만.박정희.노태우는 미국→일본→중국.소련으로 확대되는 관계지평을 구축했고, 김대중은 대결의 심부 평양에 도달했다. 모든 관계를 열자 노무현은 갈등의 진앙 한반도를 동북아 평화와 협력의 가교로 만들려 시도한다. 둘째는 대외조건의 활용능력이었다. 우리의 조건은 늘 국가전략의 선택에 불리했다. 그러나 지정학적 요충, 열강 갈등의 초점, 냉전의 전방초소 위치는 한국 문제를 국제 문제로 상승시킴으로써 역으로 우리 자신의 선택에 따라 우리의 비중을 키울 수도 있었다. 이 역설을 최대로 활용한 이승만.박정희.김대중의 능숙한 전략은 한국 문제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셋째는 역사로부터의 학습이었다. 중.일.러 인접 대국의 대한(對韓) 침탈의 역사를 잘 아는 이승만은 미국을 선택했다. 그러나 미국의 태프트-가쓰라 밀약, 38선 분할, 주한미군 철수로 인한 비극 또한 알았기에 전후 협박과 애원을 결합해 동맹을 맺었다. 김대중은 남북 대결로 인한 고통과 약소국의 비원을 숙지, 최초로 주변 4강 및 북한 모두와의 전방위 선린관계를 구축하고자 했다. 노무현은 이제 평화허브를 위해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 동북아 다자안보와 한.미동맹의 쌍방향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려 한다.

우리 국가전략의 성공은 상당한 대가를 수반한 것이었다. 때로는 안보와 주권의 핵심 부분과 민족적 자존의 훼손을, 때로는 경제와 문화.정신의 부분적인 종속을 초래하기도 했다. 또는 민주주의의 유보와 국제사태에 대한 내키지 않는 연루로 연결되기도 했다. 이제 자주-동맹과 같은 양분 구도를 극복하기 위한 창조적.비판적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첫째는 중견국가로서의 자기역량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다. 과대평가와 과소평가는 극단적인 민족주의와 대외 의존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현실과 이상의 균형이다. 국가전략에서 '현실'과 '이상' 사이의 단일 선택은 일견 명쾌해 보이나 그러한 이분법은 '현실'을 선택하려다 '영혼'을 버리거나, 반대로 신념을 고수하려다 국가전략의 위기로 연결될 수 있다. 셋째 국가와 지역, 민족과 세계의 결합이다. 국익을 위해 협력하고, 협력을 통해 국가.지역.글로벌 이익을 함께 증진하는 전략이다. 다자주의가 한 대안일 수 있을 것이다. 넷째는 영역의 분리 및 복합 접근이다. 이제 안보.경제.문화.환경이 각각 유일 대상과 범주로 사고될 수는 없다. 미국과의 안보관계를 위해 중국과의 경제적.문화적 협력과 이익을 포기하거나, 반대로 후자를 위해 전자를 할애해서는 안 된다.

이상과 현실, 민족주의와 국제주의, 친미와 친중, 자주와 동맹, 친북과 반북 사이의 이분법적 논란은 과거 변방 약소국가와 냉전시대 양분과 선악 논리의 유산일지 모른다. 이들을 넘어 나아가는 '이상적 현실주의'와 '현실적 이상주의'가 가능하며 바람직한 하나의 대안적 국가전략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국가전략에서의 중용지도(中庸之道)가 아닐까 싶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