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석영 “민주공화국에서 투표는 세상을 변화시킬 최소한의 권리이자 의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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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가 17년 만이었을 것이다. 대통령을 국민 투표로 선출하게 된 게. 1972년 10월 유신 이후 간선제였던 것이 87년 마침내 직선제로 바뀌었다. 6월 민주화 항쟁의 결과였다. ‘청년작가’ 시절을 보내고 ‘중견 소설가’로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중앙일보-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공동기획] 선거와 나 / 황석영의 의무

연희동 동사무소에 마련된 투표소로 가는 길이 그렇게나 어색했다. 누가 따라오는 것은 아닌지 뒤통수가 뒤숭숭했다. 아직은 ‘군사정권’이었다.

소설가 황석영 [중앙포토]

소설가 황석영 [중앙포토]

그날 투표소 분위기도 참 기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투표소에서 용지를 받아든 이들의 몸짓이 부자연스러웠다. 어딘가 감시하는 것은 아닌지, 투표함에 기표용지를 정말 넣어도 되는 것인지…. 다들 의심어린 눈초리를 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헌법 1조1항은 이렇게 말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다수가 ‘민주’라는 말은 이해하는데, ‘공화국’의 의미를 생각하는 이는 별로 없다. 공화국이란 ‘공공성을, 주권을 가진 국민의 결정에 따라 실행하는 나라’라는 뜻이다. 바로 그 주권을 드러내는 행위 중 하나가 바로 ‘투표’다.

17년 만에 되찾은 투표용지가 낯설었던 그 시절은 뼈아픈 현대사의 교훈일 것이다. 우리는 곡절 많고 상처도 많은 현대를 살아왔다. 이번에 느닷없이 주어진 대통령 보궐선거는 우리가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던 과거의 잔재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사람과 역사의 가장 큰 특징은 ‘변화’에 있다. 다시 말하자면, 역사를 변화시키는 것은 사람의 힘이다. 민주공화국에서 투표는 세상과 역사를 변화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이자 의무다.

우리는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있다. 이번 선거에선 냉정하고 지혜롭게 선택해야 할 것이다. ‘한 표’의 가치가 그 어느 때보다 무겁다. 오래 전부터 우리가 함께 제정하고 지켜온 헌법의 정신이 온전하게 지켜지는 나라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소설가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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