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교양] '손오공 경제기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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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오공 경제기행'은 얼핏 아무 관계가 없을 것 같은 두 소재를 엮어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기업경영에 대한 충고를 재미있게 풀어낸 책이다.

손오공이 삼장법사를 따라 불경을 구하러 가는 길에 겪는 모험을 다룬 '서유기'는 중국의 4대 기서 가운데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저자는 요괴를 물리치고, 유혹을 이겨내는 이 여정을 기업경영에 대비하면서 자본주의 사회는 결국 기업전쟁이라는 점을 은근히 내비친다.

이 책에서는 손오공이 털을 뽑아내 자신의 분신을 만드는 것을 기업분할로, 손오공의 독으로 독을 치는 이독공독책(以毒攻毒策)은 기업이 상대방과 같은 방법으로 경쟁사를 꺾는 전면전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 손오공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동원하는 변신술을 통해서는 기업도 적절한 변화를 통해 살아남을 수 있음을 설명하기도 한다. 손오공의 명성을 이용해 위기를 넘기는 삼장법사 이야기는 최근 빛을 보고 있는 스타 마케팅에, 그리고 혼자서만 모든 것을 챙기려다 화를 당하는 삼장법사는 부하에게 재량권을 주지 않는 최고 경영인에 각각 견주는 대목은 쿡쿡 웃음짓게 만든다.

한편 이 책은 '서유기'뿐 아니라 '삼국지''손자병법'등 중국의 고전을 인용해 기업이 지녀야 할 덕목이나 전략 등을 자세히 소개한다. 저자는 최근 중국이 경제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탁월한 경제감각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면서 중국의 고전에는 그들의 전술, 전략과 함께 경제감각이 많이 들어있다고 강조했다.

이 책이 편하게 읽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장난스런 손오공의 비유 뿐 아니라 삼성.현대.한진.LG 등 국내 대기업과 그 리더들의 이름이 실명 그대로 인용되면서 그들의 기업활동에 얽힌 일화가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또 국내 기업 뿐 아니라 에너지 회사인 로열 더치 셸의 문양이 왜 조개껍질인지, 어떻게 포테이토칩이 생겨나게 됐는지 등 세계의 다국적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업들의 이야기가 생동감을 더한다.

이 책에서는 또 기업도 윤리의식이 뚜렷하고, 공익사업에 나서는 등 장기적으로 사회에 이바지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점을 손오공이 어린이를 구출한 모험이나 삼장법사가 불경을 위해 천축국 부마 자리를 포기하는 내용 등에 비유하며 강조하고 있다.

경영에 관한 참고서이지만 무겁지 않은 기분으로 가볍게 읽기에 적절하다.

신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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