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심판홍은아의여기는프리미어리그] "인정, 박지성…그는 맨U의 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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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박지성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풀럼전. 버밍엄에 심판을 보러 집을 나서는데 오늘 뭔가 일이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아무래도 밤에 데뷔골 기사를 써야 하지 않을까라는.

역시 예감이 딱 맞아떨어졌군요. 제가 심판을 본 세미프로 경기가 4일 오후 3시(현지시간)에 킥오프를 했거든요.

다행히 맨U 경기 시작이 5시15분이라 전반 중반부터 볼 수 있었네요. 경기를 마치고 구단의 펍에 들어서는데(샌드위치 등의 간식을 먹으며 동료 심판들과 경기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TV로 보는 것까지가 토요일의 일과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한 중년의 아저씨께서 저희 쪽으로 오시더니 "혹시 Park이랑 같은 나라 사람이냐"고 물으시더군요.

물론 저밖에 동양인이 없기도 했고, 제가 동료에게 Park 얘기를 하고 있었거든요.

"그렇다"고 했더니 "I will tell you what…. He's got the future! (내가 얘기해 줄 게 한 가지 있는데 말이지요…. 그의 미래는 탄탄대로예요!)"라며 약간은 알코올 기운이 감돈 목소리로 크게 외치더군요.

전반 중반까지의 플레이가 어땠느냐고 묻자 "첫 골을 전반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Park이 넣었다, 게리 네빌 패스를 받아 넣었는데 크로스인 것 같기도 했고, 슈팅 같기도 했고. 어쨌든 fantastic, brilliant(영국 사람들이 잘 쓰는 단어 중 하나죠. '짱이야' 정도?)"를 계속 반복하며 "24세밖에 안 된 Park의 미래에 얼마나 대단한 일들이 펼쳐질지 생각해 봐라. 사실 나는 퍼거슨이 그를 처음에 데려올 때 그리 지지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틀렸다는 것을 요즘 인정하고 있다"라며 웃었어요.

알고 보니 아니나 다를까 맨U 골수팬이더군요. 영국 언론은 박지성의 골이 수비수에 맞고 들어갔기에 '행운'이 가미된 것이라고 언급하지만 그 행운도 실력이 있어야 잡는 것임에는 부인하지 못해요. 다들 프리미어리그 데뷔골이라는 데에 높은 점수를 주며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하는 분위기고요.

꿈의 무대, 꿈의 클럽이었던 잉글랜드 최고 명문 구단 중 하나인 맨U에 당당히 입성한 박지성, 프리미어리그 23경기, 177일 만에 한국 축구 역사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네요. 1% 축구팬들에게 아쉬움을 주었던 득점포. 역시 축구에서는 골 맛이 최고죠? ㅎㅎㅎ

맨U가 올드 트래퍼드에서 경기를 하면 언제나 여자 친구와 같이 관전을 하는(시즌 티켓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요) 개러스 모건의 목소리는 흥분되어 있었어요. 일단 맨U가 승점 3점을 챙겨 1위 탈환의 가능성을 조금이나마 가질 수 있었다는 것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더군요. 박지성 얘기를 꺼내자마자 얼마나 줄줄 얘기를 하던지요.

"전반에 그가 보여준 에너지와 정신력은 맨U 선수들에게 모범이 될 정도로 뛰어났다. 그는 45분 동안 그라운드 전체를 커버하는 듯 보였다. 볼이 있는 곳에는 어디든 Park이 있었다는 인상을 심어 줬으니까 말이다. 사실 지난번 풀럼과의 어웨이 경기에서 박지성의 활약은 정말 90분 내내 환상적이었다. 이제 그를 풀럼 킬러라고 불러도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번 풀럼전에서는 후반 들어서는 별로 눈에 띄지 않았고 아직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But! 그가 맨U의 미래임에는 더 이상 부인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역시 퍼거슨은 아시아 그 먼 곳에서 티셔츠를 더 팔 목적으로 선수를 데려올 사람이 아닌 것이다. 그는 세계에서 선수의 잠재력을 간파하고 그것을 향상시킬 수 있는 몇 안 되는 감독 중 한 명"이라고 했어요.

골 부담을 완전히 날려버린 한국 축구의 희망, 맨U의 희망인 박지성 선수. 그의 계속되는 활약에 전 세계 한국인들의 어깨가 한껏 쫙 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홍은아 <영국 러프버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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