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다리 잃은 30대 장애인, 대학 강단 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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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캠퍼스에서 학생들과 함께 포즈를 취한 박경순 교수(맨 앞). [사진 한남대]

캠퍼스에서 학생들과 함께 포즈를 취한 박경순 교수(맨 앞). [사진 한남대]

초등학교 때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30대가 대학 강단에 섰다. 지난 1일 대전 한남대 행정학과에서 강의를 시작한 박경순(32) 겸임교수가 주인공이다. 지난달 한남대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박 교수는 이 대학 행정학과와 사회복지학과에서 ‘공직특강’ ‘행정학 개론’ 등을 가르치고 있다.

박경순 한남대 행정학과 교수 #“취업·창업 돕는 협동조합 만들 것”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때인 1994년 등굣길 횡단보도에서 트럭에 치여 무릎 이하 두 다리를 잃었다. 그의 부모는 아들을 장애인학교 대신 일반 초·중·고교에 보냈다. 비장애인 학생들과 어울리면서 교육을 받는 게 아들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주로 어머니 김영해(64)씨가 아들을 직접 차에 태우고 등교시켰다.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교사가 휠체어를 끌고 부축해 움직일 수 있게 도와줬다.

박 교수는 “중학교 시절에는 합창단원으로 노래하고, 고교 시절에는 친구들과 배드민턴도 했다”며 “고교 문학수업 시간에 정지용 시인의 시로 노랫말을 만든 ‘향수’를 친구들 앞에서 부르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박경순 교수.

박경순 교수.

그는 2005년 한남대 행정학과에 입학했다. 이왕이면 일반 공무원 시험 준비에 용이하고 교직 이수까지 가능한 전공을 선택했다. 교사가 되기 위해 교직 관련 과목(사회)을 복수전공했다. 박 교수는 “학교에 다니면서 도움을 준 은사님들을 보면서 훌륭한 교사가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애인으로 교사가 되기는 쉽지 않았다. 장애인을 위한 일선 학교의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았고 장애인을 보는 사회적 인식도 썩 좋지 않았다. 그래서 교수가 되기로 목표를 바꿨다. 2009년 한남대 대학원에 진학해 8년 만에 석·박사과정을 마쳤다. 대학원에 다니면서 장애인 고용 문제 등의 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했다.

박 교수는 2015년 지도교수, 선후배 10여 명과 기금 200여만원을 마련해 ‘마중물 장학회’를 만들었다. 이 돈으로 매년 학과 후배들에게 일정액의 장학금을 주고 있다. 올해는 선후배들과 협동조합을 만들어 창업이나 취업 지도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그는 “앞으로 시민단체와 장애인단체 활동에도 적극 참여해 봉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전=김방현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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