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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직 잘되는 일본, '중기 임금상승률' 대기업 넘어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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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최근 일본에서 구직시장을 설명할 때 ‘프리터·패러사이트족’이란 용어가 저물고 ‘오와하라(おわハラ)’라는 신조어가 많이 쓰인다. 기업들이 심각한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어 다른 기업에 취업하려는 구직자들을 방해하고 괴롭힌다는 뜻이다. ‘끝내라(おわれ)’라는 뜻의 일본어와 ‘괴롭힘(harassment)’을 뜻하는 영어의 합성어다. 요즘 일본의 구인난은 취업 빙하기를 겪은 1990~2000년대와는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고령화·저출산 추세 계속 #일자리에 비해 인력 부족 #유통·식음료 등 서비스 업종 #임금 상승세 더 두드러져 #외면하는 청년 구직자들 유인

미즈호종합연구소는 후생노동성의 근로통계조사를 분석한 결과 근로자 100명 미만의 중소기업 임금상승률이 지난해 0.9%를 기록했다고 20일 밝혔다. 이는 근로자 500명 이상 대기업의 지난해 임금상승률(0.6%)을 웃도는 것이다.

이처럼 중소기업 임금이 많이 오른 것은 극심한 구인난 때문이다. 1947~49년 태어난 단카이(團塊·덩어리) 세대가 2000년대 중후반 대거 은퇴하기 시작하면서 취업시장에서 일자리보다 사람이 더 귀해졌다. 일본 중소기업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급여가 낮고 일이 고되다는 인식 때문에 청년 구직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임금을 높이고 근로조건을 개선해서라도 구직자를 끌어와야 하는 실정이다.

근로자 수 및 평균 연봉

근로자 수 및 평균 연봉

이미 일부 연구조사에서는 영세기업의 연봉이 중견기업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도쿄노동상담정보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도내 10~49명의 근로자가 일하는 사업체의 평균 월급은 33만6925엔(7월 기준)으로 50~99명 36만3167엔, 100~299명 34만743엔과 큰 차이가 없었다.

일본 인구

일본 인구

일본의 구인난은 고령화·저출산으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일본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의 추계에 따르면 일본 인구는 2005년 1억2777만 명에서 2030년 1억1522만 명, 2050년 9515만 명으로 감소한다. 일본은행은 기업단기경제관측조사를 통해 대기업의 인력 부족현상은 2006년 수준이며, 중소기업의 경우 거품이 최고조에 달했던 90년대 초와 비슷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일본의 대졸 취업률은 97.3%, 고졸 취업률은 97.7%에 달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고질적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유통·식음료 등 서비스 업종에서 임금 상승세가 두드러지고 있으며, 부품 등 제조업에서도 일손 부족이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정규직 비중이 낮고 근로자의 근속기간이 짧은 유통업의 경우 파트타임 근로자의 임금상승률이 정규직보다도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일본 중소기업은 2015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원유 가격 안정과 엔화가치 하락으로 실적이 개선되고 있다. 급여를 인상하고 새 직원을 뽑을 수 있는 여력이 생기고 있다는 얘기다.

기업의 실적 개선과 중소기업의 임금 상승은 일본 정부가 유도한 측면도 있다. 정부는 임금 인상으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한편 구직자보다 일자리가 많은 노동 수급의 불균형을 깬다는 계획이다. 현재 일본은행의 목표는 2018년까지 인플레이션율 2% 달성이다. 90년대 초 일본에서는 매년 물가상승률에 맞춰 임금이 오른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러나 디플레이션 여파로 물가가 떨어지고, 기업들도 20여 년간 임금을 거의 올리지 않고 있다. 앞으로는 이런 악순환을 깨겠다는 것이다.

미즈호종합연구소 다카다 하지메(高田創)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중소기업의 임금이 꾸준히 오르기 위해서는 원자재 가격이나 환율 변동을 소비자가격에 잘 반영함으로써 경영 체력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물가 상승을 전제로 한 임금 인상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일본의 중소기업들이 단기적으로 임금을 올린다고 구인난을 해소할 수 있을지는 조금 더 지켜볼 일이다. 엔저와 함께 중국 등 동남아 지역의 인건비 상승, 신흥국의 소비자 니즈 변화, 일본 정부의 정책적 노력 등으로 본국으로 돌아오는 유턴 기업이 늘고 있어서다. 일본에 터를 잡은 기업이 늘어나면 구인난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 일본은 정년을 연장하고 가정주부의 경제활동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심지어 기업들에 근로자의 겸업·부업을 허락하도록 장려하는 등 일하는 분위기를 근로자 친화적으로 바꾸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고용을 늘리기 위해 중소기업의 경쟁력도 더 높일 필요가 있다. 미즈호종합연구소는 “최근의 기업 경기 회복은 공공 투자와 유가 안정 등 일시적 요인에 의존하고 있다”며 “세제 혜택 등 중소기업이 설비 투자를 확대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고 기술력과 서비스 향상 등 기업의 부가가치를 늘리는 방법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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