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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종 시대의 그림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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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지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지영 문화부 차장

이지영
문화부 차장

큰애가 대학에 간다.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을 통해서다. 결과는 ‘해피엔딩’이지만, 경험자 입장에서 ‘학종 시대’라 불릴 만큼 학생부종합전형이 확대되는 추세는 심히 걱정스럽다. 학종의 비인간적·비교육적 측면을 생생히 지켜봤기 때문이다.

학종은 정성 평가를 표방한다. 내신이나 수능의 수치에 연연하지 않고, 학생부의 질을 본다고 한다. 학생부에 기록된 교과 ·비교과 실적을 종합적으로 따져 학업 능력과 전공 적합성 등을 평가한다. 하지만 실제 겪어 보니 학종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는 내신 성적이었다. ‘일반고에서 인서울 하려면 1∼2점대 내신 등급을 받아야 한다’는 게 가이드 라인으로 통하고, 내신 등급이 3 이상일 경우 학종은 ‘무모한 도전’ 취급을 받는 게 현실이다. 내신을 2.99등급(등급은 소수 둘째 자리까지만 표시된다)이라도 받으려면 성적은 상위 23% 이내에 들어야 한다. 나머지 아이들에게 학생부 관리는 사실상 무의미하다. 동아리나 봉사활동, 독서와 수상 이력에 힘을 쏟아봐야 활용할 데가 없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그래서 고등학교 교실에는 두 종류의 아이들이 생긴다. 학종을 겨냥하는 아이들은 학생부 평가에 묶여 3년 내내 옴짝달싹못하고 살얼음판을 걷는다. 인성 리더십 항목을 채우기 위해 서로 임원이 되겠다 나서고, 교과 세부특기사항에 ‘적극적으로 참여’라는 한 줄을 넣으려고 수업시간 발표 횟수까지 경쟁하는 형국이다. “학종 덕에 공교육이 정상화됐다”는 평가가 일선 고교에서 나오는 것은 바로 이런 아이들이 있어서다.

반면 학종을 포기한 아이들은 학생부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지고, 동시에 학교 활동에서 소외된다. 임원을 하고 상을 받아봐야 학종 가능권 아이들의 스펙 확보 기회를 빼앗는 몰지각한 행동이 되기 십상이다. 학종의 가장 큰 문제는 내신이 일정 범위 안에 들지 못하는 절대다수의 아이들을 아웃사이더로 내몬다는 점이다. 어느 입시가 성적 나쁜 학생에게 호의적이겠느냐만, 학종은 이들의 일상 고교 생활까지 위축시킨다는 점에서 더욱 잔인하다. 게다가 이렇게 아이들을 나누는 기준인 내신 성적은 ‘패자 부활’이 어렵다. 3학년에 올라와 1등급을 올려도(실제 엄청난 성적 상승이다), 전체 평균 등급(3학년 1학기까지 다섯 학기를 반영한다)은 0.2밖에 올라가지 않는다. 그러니 한두 번 시험을 치른 뒤 학종과 학교 생활을 모두 지레 포기하는 아이들이 속출한다.

학종이 낳은 문제들의 근본 원인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서열화·학벌 사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종으로 입학한 대학생들의 학점이 가장 높다” 식의 장점만 내세워 학종이 대세가 되는 것은 위험하다. 수능이든, 논술이든, 다른 방법으로 낮은 내신 성적을 만회할 문을 너무 좁혀서는 곤란하다.

이지영 문화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