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손실난 DC형 퇴직연금…그래도 잘 나간 메트라이프·흥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3면

퇴직연금, 그 중에서도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 수익률에 비상등이 켜졌다. 직원들이 퇴직급여를 펀드에 투자해서 불리기는커녕 오히려 원금을 까먹고 있어서다.

실적배당형 지난해 평균 0.1% 손실
중소형주·채권형펀드 부진 여파
DC형 가입자, DB형 전환 불가능
시장 잘 살펴 본인이 수익 관리해야

-0.1%. 지난해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 중 원금비보장(실적배당형) 상품의 평균 수익률이다. 4개 금융협회(은행연합회, 생보·손보협회, 금융투자협회)가 각각 공시한 퇴직연금 수익률을 통합해서 계산한 결과다(적립금 100억원 이상 금융사 기준). DC형 원리금비보장상품의 적립금이 100억원이 넘는 금융회사 30곳 중 20곳이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DC형은 회사가 직원의 퇴직연금 계좌로 넣어준 퇴직급여(연간 임금의 12분의 1)를 직원이 펀드 등을 통해 각자 알아서 굴린다. 회사가 운용하는 확정급여형(DB) 퇴직연금과 달리 DC형은 수익률에 따라 나중에 받게 될 퇴직연금 액수가 달라진다. 튼튼한 노후 대비를 위해 DC형 퇴직연금의 수익률이 중요한 이유다. 그런데 실적배당형 상품을 기준으로 할 때 DC형의 평균 수익률은 DB형(1.04%)에도 못 미쳤다. 지난해 코스피지수가 3.3%, 코스피200지수는 8.2% 상승했음을 감안해도 상당히 저조한 성적이다.

DC형 원리금비보장 상품의 수익률이 떨어진 것은 중소형주와 채권형펀드의 부진 탓이 크다. 국내 최대 규모의 퇴직연금펀드인 ‘KB퇴직연금배당40자’(설정액 1조6703억원)는 지난해 연간 수익률이 -1.32%에 그쳤다. 주식의 상당수를 중소형 배당주로 채우고 있는 이 펀드는 2015년까지는 좋은 성과를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해 증시가 대형성장주 위주로 재편되면서 수익률이 저조했다. 이러한 시장의 변화를 DC형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미처 읽지 못한 셈이다.

퇴직연금은 보수적으로 운용해야 한다는 생각에 채권형펀드에 자금이 많이 몰린 것도 문제였다. 미국의 금리 인상 예고와 트럼프 대통령 당선으로 시장금리가 급등하면서 채권형펀드는 지난해 하반기 부진을 면치 못했다. 한 시중은행 담당자는 “시장금리 상승이 예상되는 하반기에도 퇴직연금 자금은 오히려 채권형펀드에 집중됐다”며 “과거 수익률만 본 일종의 뒷북 투자”라고 지적했다.

금융회사 중 상대적으로 양호한 수익률을 올린 건 메트라이프생명(2.76%), 흥국생명(2.64%), KB손보(2.23%)였다. 흥국생명 관계자는 “채권형펀드는 부진했지만 대형주 비중이 큰 인덱스혼합형 펀드가 양호한 성적을 보여 선방했다”고 설명했다. 대형 시중은행 중엔 농협은행만 간신히 플러스 수익률(0.24%)을 기록했다. 증권업계도 대체로 부진해 1.15% 수익률을 올린 신영증권이 업계 톱이었다. DC형 원리금비보장 상품의 적립금 규모가 가장 큰 미래에셋대우증권(1조377억원)은 -0.88% 에 그쳤다.

DB형 퇴직연금 가입자는 노사가 합의했다면 DC형으로 전환할 수 있지만 DC형은 DB형으로 바꿀 수가 없다. 이미 직원의 계좌로 퇴직급여가 입금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DC형 퇴직연금에 가입된 근로자라면 지금이라도 수익률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 퇴직연금은 장기투자 상품이라는 점에서 1년 수익률에 지나치게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전체 임금 근로자의 근속연수가 평균 6.1년임을 감안하면 5~6년 이상의 투자성과가 더 중요하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분산·장기투자라는 투자의 기본원칙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농협은행 투자상품관리팀 송창대 차장은 “예금금리가 1%대인 지금은 연 3~4%로 목표수익률을 잡고 리스크를 줄이는데 집중해야 한다”며 “뒷북·몰빵투자가 되지 않도록 10년 이상 잡고 분산투자할 것”을 조언했다. 신영증권 관계자는 “시류에 따르기보다는 연령과 상황에 맞는 포트폴리오 구성이 중요하다”며 “고객들이 자신의 수익률에 관심을 가지고 관리할 수 있도록 영업점에서도 도움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130조원이 넘는 퇴직연금 적립액 중 90%는 원리금보장 상품에 투자되고 있다(지난해 9월 말 기준). 은행 예금이나 공시이율형 보험상품이 여전히 주를 이룬다. DC형 퇴직연금 중 원리금보장 상품의 지난해 수익률은 최저 1.39%에서 최고 2.81%로 편차가 있었다. 대체로 은행권은 1%대, 보험사는 2%대 수익률을 기록했다. IBK연금보험 관계자는 “원리금보장형은 금융회사가 얼마나 높은 이율을 제시하느냐에 달려있다”며 “퇴직연금 영업에 집중하는 금융회사일수록 수익률이 높게 나오기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확정급여형(DB)과 확정기여형(DC)

DB형은 회사가 퇴직연금을 운용한다. 근로자가 받을 퇴직급여는 ‘퇴직 직전 월급X근무연수’로 확정돼있다. 적립금 운용 수익률에 따라 회사의 부담만 달라진다. DC형은 회사가 연간 임금의 12분의 1을 근로자의 퇴직연금 계좌에 넣어주고 운용은 근로자가 직접 한다. 운용성과에 따라 본인의 퇴직연금이 늘거나 줄어든다. 임금 인상률이 운용 수익률보다 높으면 DB형이, 반대이면 DC형이 근로자에게 유리하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