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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있는 그림] 피카소 '마 졸리-기타를 든 여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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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면

옆으로 앉아 기타를 연주하는 여성의 모습이다. 동그란 공명통 구멍 위로 놓여 있는 6개의 현을 양팔과 손가락으로 퉁겨낸다. 왼쪽 아랫부분엔 엉덩이의 곡선이 보이고 높은 음자리표 위엔 보면대가 놓여 있다.

불분명한 명암에다 유리조각처럼 날카롭게 분할된 평면 때문에 인체와 악기의 모습을 쉽게 알아볼 수 없다. 이쯤 되면 숨은 그림찾기나 퍼즐 맞추기나 다름 없다. 연주자(인체)와 기타(악기)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이다.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마 졸리-기타를 든 여인'(1912)에서 기타는 여자의 몸체를 상징한다. 바이올린과 마찬가지로 기타는 여체(女體)를 닮았다. 악기는 에로티시즘의 상징이다.

평소엔 죽어있는 사물이나 다름 없지만 손을 대면 살아움직이면서 소리를 낸다. 기타는 무릎과 가슴, 양팔로 감싸 안아야 소리를 낼 수 있는 악기다. 연주자와 악기가 '한 몸'이 되어야 좋은 선율을 낼 수 있다.

그림 맨 아래에 'MA JOLIE'라는 글씨가 보인다. '내 귀염둥이'쯤으로 번역되는 프랑스어다. 피카소가 중국 인형처럼 예쁘고 깜찍했던 애인 에바 고윌(일명 마르셀 훔버트)에게 붙여준 애칭이다. '마 졸리'는 당시 해리 프레이그슨(1869~1913)이 불러 유명했던 '마지막 노래'에 나오는 구절이기도 하다.

피카소가 에바에게 바치는 노래다.음반과 축음기가 귀했던 시절 술집마다 피아노가 있었고 유행가를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신문에 악보와 가사가 실리기도 했다. 그림 제목에서 피카소의 사생활과 당시 사회적 분위기가 교묘하게 오버랩된다.

피카소가 1912~14년 발표한 작품 중 절반 이상이 음악을 주제로 한 것이다. 그가 현악기를 새로운 오브제로 주목하게 된 계기는 1909년 가을 살롱전에서 맞닥뜨린 장 카미유 코로(1796~1875)의 '만돌린을 든 집시 소녀'(1874)였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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