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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록의 전설을 쓴 악동 형제… 오아시스는 영원하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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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스(The Beatles)를 제외하고 1960년대 영국 록 음악을 이야기할 수 없듯, 브릿팝(Britpop·1990년대 이후 영국의 모던 록음악)의 황금기였던 1990년대를 말할 때 이 밴드의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슈퍼소닉’(원제 Supersonic, 11월 24일 개봉, 맷 화이트크로스 감독)은 2009년 해체된 영국의 5인조 악동 밴드 ‘오아시스(Oasis)’를 조명한 다큐멘터리다. 이 밴드의 리더 노엘 갤러거(49)·보컬리스트 리암 갤러거(44) 형제의 치열한 애증 관계를 중심으로, 1991년 밴드 결성부터 2009년 해체까지 이 걸출한 밴드의 흥망성쇠를 따라간다. 갤러거 형제의 거칠면서도 유쾌한 입담, 이들이 남긴 명곡들을 재기 발랄하게 결합해 커다란 재미와 감동을 안긴다. 대중음악평론가 김영혁 김밥레코즈 대표가 ‘슈퍼소닉’ 개봉을 맞아 오아시스에 대한 애정이 담뿍 담긴 글을 보내 왔다.

리암 갤러거(왼쪽)와 노엘 갤러거

리암 갤러거(왼쪽)와 노엘 갤러거

1962년, 아일랜드에서 영국 맨체스터로 간 한 여인은 세 아들을 낳았다. 남편은 틈만 나면 폭력을 휘둘렀고, 결국 그녀는 남편을 떠나 홀로 아이 셋을 키웠다. 밖에서 사고나 치고 싸움질하다 머리가 깨져서 돌아오는 막내아들을 보며 자신의 삶을 한탄했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녀는 그 모든 것을 견디려 했다. 강인함과 인내심을 동시에 소유했을 어머니, 페기 여사가 집에서 기타를 품고 살던 둘째 아들과 사고뭉치 셋째 아들을 보듬고 키워 낸 덕분에 ‘오에이시스’, 국립국어원 권장 표기법으로 ‘오아시스’라 쓰는 로큰롤 밴드가 존재할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 ‘슈퍼소닉’

오아시스를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이 밴드의 대다수 지분은 ‘갤러거(Gallagher)’라는 성(姓)을 쓰는 형제가 보유한 것을. 아니, 이 형제는 어쩌면 ‘오아시스’라는 밴드보다 더 유명할지도 모른다. 만일 종종 접속하는 SNS 계정을 하나라도 갖고 있다면, 이들의 인터뷰 영상을 한 번쯤은 본 적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우리는 돈 때문에 공연하는 거야. 그러니 (공연장에서) 나갈 때 빌어먹을 티셔츠랑 포스터를 사라고” 내지는 “고기 많이 먹고, 담배 피고, 맥주 많이 마시고, 늦게 자는 것이 중년의 건강 비결”이라 말하는 자막이 흐르는, 소위 ‘오아시스 인터뷰 짤방’을 한 번쯤은 본 적 있을 것이다. 냉소적인 표정으로 세상의 온갖 존재를 평가절하하면서도, 한국 팬을 포함해 자신들을 지지하는 팬들에게만큼은 특별한 애정을 드러낸 이들의 몇몇 인터뷰는 오아시스의 음악만큼이나 많은 사람에 의해 공유돼 왔다. ‘슈퍼소닉’은 1994년 밴드 오아시스의 데뷔부터, 1996년 무려 관객 25만 명을 동원한 넵워스(Knebworth) 페스티벌 무대까지, 약 3년간의 시간을 다룬다. 이 다큐멘터리가 국내 개봉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어쩌면 한국 전역에 널리 알려진 이 형제, 노엘 갤러거와 리암 갤러거의 톡특한 캐릭터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맨체스터의 반항아들

“우리가 ‘로큰롤계의 악동’이라고? 그것도 좋긴 한데 음악 얘기부터 하면 안 돼?”(노엘 갤러거) 이 영화 역시 두 사람의 얘기에 집중한다. 마리화나와 기타 연주에 빠져 집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형 노엘, 누군가에게 망치로 얻어맞기 전까지 음악에 전혀 관심 없었던 동생 리암. 이 형제가 함께 밴드를 만들고 ‘아슬아슬하게’ 밴드를 이끌어 가는 과정이 많은 사진과 영상, 인터뷰를 통해 펼쳐진다. 발매 당시 영국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판매된 데뷔 앨범 ‘데피니틀리 메이비(Definitely Maybe)’에 수록된 노래 ‘로큰롤 스타(Rock ‘N’ Roll Star)’처럼 이들은 스타가 되길 원했고,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꿋꿋이 버텼으며, 어느 날 갑자기 자신들이 장담했던 것 이상으로 음악계의 중요한 인물들이 되어 버렸다.

스스로 “세계 최고의 로큰롤 밴드”라 말하는 오아시스의 성공 속도는 이 영화 제목처럼 ‘슈퍼소닉(Supersonic)’, 즉 초음속이었다. 아버지 때문에 순탄치 않았던 자신들의 성장 과정으로 인해 늘 무언가에 화나 있거나, 무언가에 지나치게 몰입했던 갤러거 형제. 그들은 성공 앞에서 자신들을 제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약물 투여로 공연을 망치고, 감정을 관리하지 못해 무대에서 갑자기 내려오고, 심지어 투어 콘서트 도중 갑자기 잠적하는 돌출 행동이 종종 이어졌다. ‘토크 투나잇(Talk Tonight)’ 같은 멋진 곡들은 이런 과정에서 탄생했지만, 밴드의 다른 멤버들과 주변 사람들은 갤러거 형제의 돌출 행동 때문에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질투는 갤러거 형제의 힘

오아시스는 노엘과 리암, 서로 상반된 성격의 두 남자 덕분에 탄생했다. 하지만 동시에 이 밴드는 이들 때문에 해체됐다. 2009년 노엘과 리암은 투어 도중 화해가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큰 싸움을 벌였고, 이내 밴드는 해체를 선언했다. 그것은 언젠가 일어나리라 예상했던 일이었다.

이 다큐멘터리가 주로 다루는 시간, 즉 밴드 결성부터 세계적 밴드로 자리 잡기까지도 그런 위기는 늘 있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다름’으로 인해 촉발된 긴장감은 밴드를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은 원동력이기도 했다. 서로를 향해 종종 “쓰레기 같다”고 말하지만 리암은 노엘의 작곡 능력을 질투했고, 노엘은 자신보다 신체적 조건이 좋고 무대 장악력이 뛰어난 리암을 부러워했다. 노엘이 밴드 멤버들을 통솔할 때 리암은 불만을 가졌고, 리암이 멋대로 노래하거나 무대에서 급작스레 내려갈 때 노엘은 분노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방식’으로 서로에게 의지했고, 서로를 구원했다. 아니, 그래야만 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오아시스’라는 밴드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이들의 라이브 공연은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며, 그들은 ‘공영 주택 단지 출신의 그저 그런 형제’로 남았을 테니까. 그리고 그들의 삶을 가능하게 해 준 모친 페기 여사는, 어쩌면 죽을 때까지 일만 해야 했을 것이다. 노엘도 안다. “오아시스의 최대 강점은 나와 리암의 관계였다”고 했으니까. 이들의 노래 ‘원더월(Wonderwall)’에 등장하는 “어쩌면 네가 날 구해 준 존재일지도 몰라”라는 가사는 ‘어쩌면 노엘이 리암을 두고 한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해 본다.

25만 명 열광시킨 폭발적 공연

'빈 손으로 왔지만 온 세상을 원했던 밴드’ 오아시스는 1996년 넵워스에서 이틀간 공연했다. 260만 명이 예매를 시도했고, 순식간에 매진된 그 공연에서 관객 25만 명이 그들에게 열광했다. 그야말로 전 세계를 뒤흔든 전설의 공연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공연장에 가 봤다면 알 것이다. 그 엄청난 함성이 들리는 현장이 자신을 얼마나 짜릿하게 감격시키는지. 사실 관객의 함성은 무대에 있는 누군가를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관객들끼리 서로 북돋워 주고 격려해 주는 역할도 한다. 그 경험은 곧 일상에서 잊히지만, 그 순간만큼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강렬하다. 노엘도, 리암도 그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초음속의 성공’ 뒤에는 마치 첫 키스를 나누는 연인들의 그것 같은, 폭발적 열정이 있음을. 그리고 그것은 언젠가 서서히 사그라질 것임을. 그러나 예술은 길다. “우리가 내는 음반들은 영원히 레코드 매장에 있을 것”이라는 이들의 자신감 넘치는 말처럼, 오아시스의 앨범은 여전히 음반 매장에 있고, 사람들은 지금도 이들의 음악을 듣는다. 갤러거 형제는 밴드를 해체하고 각자의 길을 가고 있다. 하지만 종종 넵워스의 무대, 거대한 불꽃놀이 같은 시간들을 떠올릴 것이다. 어쩌면 그들이 ‘거대한 재결성 무대를 만들기 위해 잠시 헤어졌을 것’이라는 생각도 종종 해 본다. 영화 ‘슈퍼소닉’은 과거 존재했던 초음속 불꽃놀이에 관한 기록이다. 스크린에서 터져 나오는 20년 전의 거대한 함성은, 갤러거 형제에게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이들의 히트곡 제목처럼 “돈 룩 백 인 앵거(Don’t Look Back in Anger·화내며 지난날을 돌아보지 말아요)”라고.

김영혁 대중음악평론가·김밥레코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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