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국2체제」적용해 "순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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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중공과 포르투갈은 포르투갈영 마카오를 99년12월20일 중공에 반환하고 1국2체제 원칙을 적용, 중공주권하의 특별행정구로 남는등 홍콩모델에 따르는 것을 주내용으로하는 협정을 마무리지음으로써 4백여년간에 걸친 마카오의 식민통치에 종지부를 찍게됐다.
양국간 협정서는 이미 포르투갈 국무회의의 동의를 거쳤으며 중공도 25일 개최되는 전인대 (의회) 의 동의를 얻어 4월10일 포르투갈 수상이 북경을 방문, 정식 조인할 것으로 전해지고있다.
이로써 중공은 향항(홍콩)을 영국으로부터 97년에, 오문(마카오)을 99년에 포르투갈로부터 반환받게돼 1국2체제의원칙 아래 금세기내「역사가 남긴 문제」 (역사유류하내적문제)를 원만히 해결하겠다는 그들의 희망을 달성했다.
또 중공-포르투갈의 마카오 반환협상은 홍콩반환협상에 비해 순조롭게 타결됐다.
두나라는 지난해 6월30일북경에서 첫 협상을 개최한 이래 오는 4월 정식조인이 될때까지 10개월간 4차례의 협상으로 해결을 봄으로써 홍콩반환을 둘러싸고 중공과 영국이 2년간 모두 4차례의 담판끝에 합의에 이른 것과 대조를 이룬다.
마카오 협상이 이처럼 순탄하게 타결된 것은 홍콩과는 달리 주권에 관한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카오 반환문제는 포르투갈에 74년 좌파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해외식민지 청산을 선언한채 정권은 74년 마카오의 주권이 중공에 있음을 확인했으며, 79년 두나라가 외교관계를 수립하면서 마카오가「포르투갈 행정하에 있는 중공영토」 임을 명시함으로써 행정관리권만이 포르투갈에 있음을 재천명했다.
포르투갈은 79년에도 마카오의 반환을 중공에 제의했으나 중공은 「시기가 성숙되지 않았다」 는 이유로 「현상유지」 를 희망한 것으로 전해져 왔었다.
이는 당시 등소평의 재집권 직후로 대외개방·대내활성화 정책을 채택, 경제건설에 중점을 두고있던 중공이 마카오 반환이 경제적 가치가 큰 홍콩의 번영과 안정에 동요를 일으킬까 염려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마카오의 반환시기가 홍콩보다 2년뒤인 금세기말로 결정된 것도 바로 이 점이 고려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미 마카오의 중공반환을 기정방침으로 확정한 포르투갈로서는 복잡한 국내 정세속에 어떻게 명예롭게 체면을 지켜가며 이를 넘겨 주는가하는 것이 실리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였다.
마카오반환협상이 홍콩반환협정 방식에 따른 것이 아니라 포르투갈의 독자적인 의사가 최대한 반영됐다는 명분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번 반환협상에서 난제로 시간을 끝었던 것은 50만 포르투갈 인구중 8만∼10만명으로 추산되는 포르투갈 국적을가진 중국인의 2중국적 문제.
포르투갈로서는 마카오통치에 협력해온 이들 중국인들의 2중국적을 허용해줄 것을 주장했고 2중국적을 허용하지않는 중공은 2중택일을 희망했으나 결국 중공이 양보하게 됨으로써 타결됐다.
홍콩에 이은 마카오의 해결은 1국2체제방식에 따라 대만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중공의 자유중국에 대한 입장을 강화시킴으로써 대만해협양안간의 장래에도 다소간 영향을 미킬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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