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황홀한 거짓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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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유안진(1941~ )'황홀한 거짓말' 전문

"사랑합니다"
너무도 때묻은 이 한마디밖에는
다른 말이 없는 가난에 웁니다

처음보다 더 처음인 순정과 진실을
이 거짓말에다 담을 수밖에 없다니요

한겨울밤 부엉이 울음으로
여름밤 소쩍새 숨넘어가는 울음으로
"사랑합니다"

샘물은 퍼낼수록 새 물이 되듯이
처음보다 더 앞선 서툴고 낯선 말
"사랑합니다"

목젖에 걸린 이 참말을
황홀한 거짓말로 불러내어 주세요



오늘 그대의 마을에 여름매미가 울거든 사랑하는 이의 고백으로 들으시라. 남산이거나 무등산이거나 정릉이거나 춘천이거나…. 혹은 어디 남쪽 진해쯤 여름밤 소쩍새 숨넘어가는 울음 들리거든 깊은 샘물처럼 새로 솟는 참말! "사랑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고백으로 들으시라.

문정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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