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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한불 껏지만 산너머 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분당의 위기까지 거론됐던 신민당의 내분이 17일밤의 전격적인 이민우·김영삼 양자회동으로 파탄 일보전에서 수습의 실마리를 찾아냈다.
두 사람이 「오랜 동지적 우정」을 바탕으로 다시 만났고 그동안 양군간 갈등의 원인인 듯이 여겨졌던 개헌노선에 대한 입장을 절충해낸 것이다.
즉 두 사람은 『대통령직선제가 불변의 당론』임을 확인하고 『인선구상이 내각제 합의의 전제조건이 아님』을 확실히 천명했다. 이총재는 그가 「선민주화」라는 용어를 사용한 적이 없었다고 주장하고 김고문은 「인우구상=민주화7개항」을 신민당의 일관된 주장으로 인정함으로써 두 사람은 자신의 입장에서 한발짝씩 물러나 타결점을 찾을 수 있었다.
분당까지 거론됐던 개헌노선의 차이가 이 정도 절충으로 타결될 수 있었다면 그렇게 유난스럽게 직선제고수·두 김씨지지 서명은 왜 했느냐는 의문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이·김 합의내용은 국민에게 오해를 준데 대해 『유감』을 표하고는 있지만 사실상 이총재가 늘 주장했던 것을 그대로 수용했고 서명직전인 지난 10일 정무회의의 결정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국 이·김양자가 분당보다 수습쪽으로 당내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는 공동의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고, 또 다른 면에서 본다면 이번 당내사태의 근본원인이 개헌노선의 심각한 차이보다 당권 경쟁적인 면에 더 있었다는 것을 설명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번 신민당의 분규는개헌노선투쟁이란 외면아래 당권경정이란 내면이 얽힘으로써 해결이 복잡하게 됐던 것이다.
이번 이·김회동에서도 개헌노선문제가 그런대로 정리될 수 있었던데 비해 전당대회 등 당권문제가 그대로 파묻혀 있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이총재는 김고문측의 해결주장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에 매듭이 지어지지 않았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결국 가장 민감한 불씨는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 됐다.
양자간에 이렇듯 당권문제에 거리가 남아있고 아직 감정의 응어리가 남아있는 듯이 여겨지는데도 불구하고 두사람이 합의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분명치가 않다.
두사람 모두 분당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어떤 이유에서든 피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총재로서는 개현노선시비가 번져나갈 경우 당의 분열공작이니, 사꾸라논쟁이니 하는 소리의 확대가능성을 우려했을 것이고 나아가 분당이 현실화되는 경우 정치적 명예가 결정적으로 훼손될 가능성 등을 고려했음직하다.
김고문 역시 지구당개편대회 불참·두김씨 지지서명 등 이총재 고사작전이 야기시킨 반사적인 비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현실적으로 그러한 조치의 실효성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던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총재나 김고문쪽이 분당이라는 극약처방으로 빚어지는 정국의 전체기류가 개헌전략의 고삐를 죄는 방향으로 몰아치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심상치 않은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특히 『선거를 있게 하는』방법으로 내년2월의 평화적 정권교체에 대처한다는 입장을 표명해왔던 김고문쪽으로는 분당보다 이총재와의 동행에 의한 협상론의 포용을 계산하고 있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이·김합의가 이미 지적한대로 개헌노선의 표면 조정에 그치고 말았기 때문에 앞으로 여러가지 고비를 넘어서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있다.
가장 큰 문제는 분당을 거의 불가피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동교동측의 추인을 받아내지못했다는 점일 것이다.
김대중씨는 이·김합의사항인 3자회동을 탐탁찮게 생각하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있다.
동교동측은 이총재의 선민주화론이나 이민우구상=민주화7개항에 대해 강한 의혹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이총재가 공식석상에서 직선제당론 불변을 누차 공언하긴 했지만 장소에 따라 뉘앙스의 차이를 보였던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같은 부신이 해소되기 어려운 상태라면 이·김합의는 오히려 두김씨의 갈등으로 번질 수도 있는 것이다.
당권문제에 대한 이총재의 태도는 김고문에게 적극적인 협조의 뜻을 나타내고 있지 않다.오히려 불만스런 태도였다고 해야 적절할 것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해 두 사람은 내분사태 시작전의 원점으로 되돌아간데 불과하다.
이 문제에 합의가 없다면 이·김간의 협력체제가 회복되었다고 할수는 없다.
이총재는 그동안 두김씨의 「김영삼총재 추대합의」에 「섭섭한 마음」을 여러번 표명했었다.
또 김고문이 당권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동교동계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김합의를 동교동계가 어떤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동교동의 협력의 강도가 정해질 것은 분명하다.
이·김회동을 못마땅히 보는 동교동측 시각이 두김씨 관계에서 어떻게 나타날지 두고볼 일이다.
또 그동안 이총재를 두김씨에게 강경히 대항하도록 뒷받침해 줬던 이총재 주변세력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다.
이런 장애요인과 더불어 비주류측이 제기해올 당지도부에 대한 비판과 당권도전·노선수정공세 등이 얽혀 사태의 완전한 수습을 힘들게 할 것이 분명하다. 특히 이철승의원의 징계문제를 어떻게 밀어가느냐에 따라 당의 전체기류가 한꺼번에 바뀔 수도 있는 형편이다.
17일의 이·김회동으로 우선 분당위기는 피했다. 그러나 이것은 사태수습으로 나가는 첫걸음에 불과하다. 2자회동합의가 3자회동에서 수용되지 못하는 한 그것은「취약한 합의」로 그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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