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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진도의 박대통령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05호 31면

‘최순실 게이트’ 기사는 일본 신문들 1면에도 넘쳐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 초기에 일본에 대해 강경 발언들을 많이 해 일본에서는 박 대통령에 대한 좋은 이미지가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이 사건이 터지면서 일본 사람들은 ‘재미있게’ 구경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복잡한 마음이지만 특파원으로서는 이를 그대로 전달할 의무가 있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떠오르는 장면들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2007년 7월 29일 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이끌었던 자민당이 참의원 선거에서 역사적 패배를 당해 1955년 당 창당 이후 처음으로 참의원에서 제2당으로 전락했을 때의 일이다. 아베 총리는 “참의원 선거는 정권 선택 선거가 아니다”며 퇴진설을 일축하고 다음 달 개각을 강행했지만 지지율은 급락했다. 결국, 건강 문제를 이유로 패배한 지 한 달 반 후에 눈물을 머금고 자진 사퇴를 표명했다. “중간에 포기한 무책임한 정치인”이란 엄청난 비판을 받고 정치 생명은 사실상 끝난 것으로 여겨졌다. 9년 후인 지금 그가 지지율 50%의 안정된 정권 운영을 하고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예상 못했다.


또 하나는 2014년 4월 17일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목격했던 일이다. 세월호 사고가 난 지 31시간 가량이 지난 그날 오후 4시쯤 박 대통령이 체육관에 도착하자마자 함성이 뒤덮였다. “내 딸 살려주세요.” 간절한 가족들은 단상에 오른 박 대통령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였다. 박 대통령이 책임자 처벌을 밝혔을 때는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다른 정부 관계자가 설명하려고 하자 “대통령만 말하라”고 가로막는 이도 있었다. 잠수사도 아닌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이 이렇게 높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면서 나는 너무 신기했다. 일본 같으면 우선 정부가 잘못했다고 사과부터 하는 자리가 될 텐데 박 대통령이 본인은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모습에도 사람들은 왜 박수를 보낼까. 그렇게 국민의 신뢰를 받았던 대통령이 2년 반 후 지지율 5%로 주저앉다니.


일본은 내각제, 한국은 직선 대통령제다. 이 차이는 많은 장면에서 느끼지만 공통점은 사람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절대적 권력을 가지는 지도자는 ‘위대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사람은 완벽한 왕이 아니고 혼자 살기에는 너무 외롭고 때로는 잘못되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정치 지도자를 뽑을 때 그들도 결국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늘 염두에 둬야 한다고 다시 한 번 생각을 하게 됐다.


오누키 도모코일본 마이니치 신문 서울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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