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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랑인 갱생 앞세워 지역 유지 행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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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신민당 진상 조사단 폭행 사건을 진두 지휘한 사회복지법인 천경원 이사 노재중씨(45).
그는『부랑인을 단순히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보다 그들에게 재활교육을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부산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씨(58)의 말을 신봉(?)하고 그대로 따른「실천가」. 노씨는 79년부터 부인 윤진순씨(44)를 천경원 이사장에 앉혀 자신이 천경원의 실제적 운영권을 장악하고 대전시 대화동과 충남 연기군에 천의원 산하 각종 시설물을 건립,「장애자 시설의 왕」으로 군림해왔다.
노씨의 현 직함은 천의원 산하 대전 원명학교(농아·정박아 교육기관)와 송현원(정신질환자 요양시설)의 원장. 사회적으로는 모 정당 충남 제1지구당 대화동 협의회장·동정자문위원·개발위원장 등의 명예직도 함께 가지고 관내 유지로 행세해 오고 있다. 충남에 있는 모대학 출신인 노씨는 65년 중등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것을 비롯, 지금까지 특수학교 교사자격·세무사 자격등의 자격증을 취득,「손색없는 사회사업가」로 행세해 왔다.
노씨가 천성원의「실세」로 등장한 것은 79년. 당시 천경원 이사장이던 형(50)이 개인사업을 위해 천의원에서 손을 떼자 그는 부인 윤씨와 함께 천의원의 주역으로 등장했다.
이때 노씨가 부인 윤씨를 이사장 자리에 앉힌 것은 특수학교 교사 자격증을 갖지 않은 부인 윤씨가 산하시설의 원장 자리에 앉을 수 없었기 때문. 이것으로 여씨는 자신을「책임」은 없고「권한」만 있는 베일 속의 인물로 만들었다.
68년 재단법인이던 천경원을 사회복지 법인으로 바꾸고 아동복지시설「충남 농아원」을 설립했다. 그후 천성원은 산하시설을 계속 설립 또는 인수, 현재 심신장애자 재활시설 2곳(정화원·대전 종합복지원), 부랑인 선도시설 2곳(성지원·양지원), 특수학교(대전 원명학교), 수익사업시설(대전 복지병원) 송현원 등 7개 시설을 거느린 충남지역 최대의 복지법인으로 변신했다.
노재중씨가 복지사업가로 제 수완을 발휘한 것은 83년 대전시 삼성동에 있던 성지원을 대전시로부터 인수, 대화동의 신축 건물로 옮길 때의 일. 당시 충남도와 대전시는『도시지역에 부랑인 수용시설이 있으면 사회적 불안요소가 된다』며 성지원을 대전시 외곽지역으로 이전토록 종용했으나 노씨는 보사부와 직접 협상, 성지원 건물 건설비 등을 전액 국고 지원 받고 위치도 대화동으로 결정했다는 것. 이때부터 지역사회에서는 노씨가「중앙에 상당한 배경이 있다」는 소문이 나돌아 노씨의 명성(?)은 더욱 높아져 갔다.
83년부터 성지원 원장으로 일해 온 노동성씨(53)는 그후 주위 사람들에게 『노이사(재중) 가 너무 독단적으로 산하시설을 운영, 원생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며 괴로워했다는 것.
노동성 원장은 성지원의 전신인 대전시「성인 복지원」관리 책임자로 있다가 천성원이 성인 복지원을 인수할 때 원장자리로 옮겼다.
탈출원생들에 따르면 고용원장인 노동성씨는 원생들의 고충과 불만을 그때그때 성지원 운영에 반영, 원생들로부터「아버지」소리까지 들었다는 것. 그러나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노재중씨가 수차례에 걸쳐 대전시에 원장 경질의사를 타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
노재중씨는 그 동안 대전지역에서「참 사랑 실천자」소리를 들어가며. 활발한 사회 활동을 펴 왔다. 노씨는 관계공무원·외부인사들이 성지원을 방문할 때마다 자신과 부인이 본관 2, 3층에 수용된 2백50여명의 환자 원생들을 정성껏 돌보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건강한 원생 2백여명을 하루 17∼18시간씩 노역시키는 직업 보도관은 일체 공개하지 않았다.<대전=임수홍·길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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