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평온…적색경보가 무색|야당도 국민 뜻에 따르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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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일의 필리핀국민투표는 이 나라가 특히 최근 두 차례의 쿠데타시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평화스럽고 원활하게 진행됐다.
이번 국민투표에 있어서는 투표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불과』3명인 것으로 전해졌는데 이는 「마르코스」와 「아키노」지지자들 사이의 충돌이 심했던 작년2월27일의 대통령선거 당시의 10분의 1에 불과한 것.
필리핀 야당은 2일 실시된 신헌법안 국민투표 초반 개표결과 찬성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것으로 나타나자 패배를 자인하고 국민의 뜻에 따를 것을 선언했다.
이번 국민투표에 대한 반대운동을 벌여온 「엔릴레」전국방장관은 『국민의 의사를 존중하겠다』고 말했으며 야당인 국민당의 사무총장이며 「엔릴레」의 절친한 친구인 「카예타노」씨는 신헌법이 국민의 지지로 채택될 것이라고 패배를 자인하면서 『국민의 소리는 신의 소리』라고 전제하고 『국민이 원하는대로 하자』고 말했다.
그는 『이번 국민투표가 우리 모두의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하고 『국민들은 발전과 민주주의를 원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 같은 국민의 뜻에 따를 것이라는 것을 정부와 모든 사람들에게 확신시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올해 54세인 「아키노」대통령은 마닐라 북쪽 타를락주의 「아키노」가 사탕수수 농장에 있는 학교교사에서 딸들과 함께 투표했는데 헌법안이 가결될 것으로 보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렇다』고 자신있게 답변했다.
이날 투표에서는 과거투표소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며 몇 차례씩 찍어대는 일부뜨내기들의 이중투표를 막기 위해 투표를 마친 유권자의 집게손가락에 잉크를 바르게 하는 등 공정한 선거라는 인상을 심기 위해 세심한 배려. 이를 위해 선거관리원들은 특히 여성유권자들에게는 매니큐어를 지우도록 했는데 이 때문에 『매니큐어와 잉크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따지는 여성들이 줄을 잇는 진풍경이 빚어지기도.
불과 며칠전의 쿠데타기도 등 위태위태하던 필리핀 정정파는 달리 정작 유권자들은이른 아침부터 투표를 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 등 대부분 차분하고 침착한 모습들이어서 필리핀군에 내려진 적색경계령이 무색할 정도.
특히 신헌법안에 대한 일부조항의 논란여지에도 불구, 투표소마다 차례를 기다리는 유권자들의 행렬로 줄을 이었는데 이날 암으로 죽기 전에 「아키노」에게 표를 던지기 위해 나왔다는 한 수녀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총명한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을 진정으로 돕는 정직한 사람』이라고 고언, 평화와 안정을 갈구하는 필리핀인들의 민심을 한마디로 대변하기도.
「라모스」필리핀 군 참모총장은 2일 「아키노」대통령이 신헌법의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에 있어 군인들에게 『매우 불공정한』투표제한을 가하고있다고 비난.
「라모스」참모총장은 군인들의 대다수가 자신의 선거구를 떠나 군복무를 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선거관리위원회가 군인들도 자신의 선거구에서만 투표하도록 규정함에 따라 수천명이 이날 투표에 참가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7일 불발쿠데타가 발생했을 때 격렬한 총격전이 벌어졌던 빌라모르 공군기지의 선거구에서는 유권자 1만3천9백39명 중 60%가 반대표를 던졌으며 마닐라시의 포트 보니파치오 군기지에서도 60%가 반대표를 던졌다고.
한편 「마르코스」전대통령의 고향인 일로코스 노르테주의 라오악시에서는 비공식집계로 7만2백68명이 반대표를 던져 1만1천7백44표의 찬성표에 비해 압도적으로 반대가 많았다고 한 민영방송이 보도했다.
하와이에 망명중인 「마르코스」전 필리핀대통령은 1일 필리핀 신헌법에 대한 국민투표가 실시되기 전에 「아키노」정부에 의해 이미 엄청난 부정행위가 저질러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날 필리핀에서 국민투표가 실시되기 바로 앞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자신은 이 같은 사실을 통보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필리핀정부의 하급공무원들과 마닐라시의 노동자들은 국민투표에 찬성표를 던지는 조건으로 1인당 1백페소(5달러)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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