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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말하고 하고 보도하라|중공 학생시위 어디로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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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달을 넘겨 신년에도 계속되고 있는 중공학생시위의 성격은 서방언론들에 의해 단편적 사실밖에 전해지지 않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 기자로 중공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강의하고 있는「테드·겁」씨가 학생시위의 저류와 근본원인에 대해 분석한 내용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
북경과 상해에서 있었던 중공학생들의 민주화요구시위는 지난 10년간 최대의 것으로 중공지도자들에게 수년래 가장 중대한 도전이다.
나는 지난 몇년동안 아내와 함께 북경에서 살아오면서 중공에 폭풍이 몰려오고 있는 것을 지켜보았다. 나는 북경에서 신문학강사로서, 아내는 중공관영통신사직원으로서 일해오면서 교사·학생·언론인·노동자들을 통해 중공의 크고 작은 시위 등 갈등의 원인들을 알 수 있었다.
중공은 넓고 복잡한 대륙이다. 많은 외국인들이 중공의 장래를 예언하려 노력했었지만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서방언론의 중공보도는 대체로 지엽적이고 학생시위보도는 실상과는 다른 것이다.
중공의 학생들은 정부의 최대의 위협요소가 아니다. 정부당국과 학생들간의 갈등은 중공에서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서방에서는 학생시위를 참가자 수의 방대함에만 이끌려 이해하고 있다. 실제시위란 하나의 발전의 징조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중공학생의 시위는 절박할정도로 거칠고 난폭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정치적 자유화란 경제적 자유화를 수반해야만 한다는 정부당국자의 발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학생들의 통제된 청원의 성격이 짙다.
중공은 전례로 보아 자유화가 단합과 안정을 위협할때 위기에 처하곤했다. 학생과 정부 양쪽에서 서로 타협의 의사가 있는한 양쪽에 의한 충돌은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중공의 학생·정부간 타협의 가능성을 믿고 있다.
중공에서 일하는 동안 나는 당국이 도전 받는 것을 자주 보아봤다. 내가 강의를 했던 북경의 사회과학원 학생들과 또다른 학생들은 크고 작은 문제들에 대해 항의를 했었다.
강의실과 칠판은 학생들이 자신들의 방안에서 요리를 할 수 있는 권리를 위한 공개토의장이 되었으며 기숙사의 복도는 미국유학에 관한 격렬한 찬반논쟁을 적은 벽보로 가득차기도 했다.
학생들만이 당국에 도전하는 것은 아니다. 한 공장에서는 약1백명의 노동자가 데모를 벌였으며 북경의 버스운전사들은 봉급인상을 요구하며 태업을 하기도 했다.
국가의 선전기구에 지나지 않는 관영통신사에서조차 많은 기자들과 편집자들이 보도의 폭을 넓히고 국가로부터의 보다 많은 독립성을 위한 로비활동을 신중히 벌였다.
이같은 일련의 움직임은 중공사회내부의 중대한 변화다.
항의를 표하는 사람들은 당국자들이 그들의 불만에 귀를 기울일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비록 이러한 시위에 용기가 필요한 것이지만 당국이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자제할 것이라는 기대 또한 많이 깔려있다.
내가 예를 든 여러 경우는 청원자들이 특별한 구원을 추구하거나 최소한 그들의 의견을 당국이 경청해주기를 바라는 시위였다. 그러나 최근 벌어지고 있는 시위는 규모가 크고 광범위하다는 점에서 앞서의 그것들과는 다르다.
시위자들은 특별한 방안을 요구하는게 아니라 그들의 불만이 국가의 관심을 끌수있도록 하는 수단을 국가가 합법화해 주기를 요구하고 있다.
이는 강경파들에게는 달가운 것이 아니다.
사실 이 학생들은 등소평을 비롯한 중공지도자들에게 자유롭게 말하고, 여러 견해를 충분히 보도하고, 대자보를 쓰고, 대토론을 벌일수 있는 4대 권리를 회복할 것을 요구하고있다.
이 권리들은 요즘 시위에서 요구한것과 같이 폭넓은 민주주의를 요구한 민주주의의 벽 사건이 있은뒤 등소평의 발언에 따라 1980년 새헌법에서는 빠져버렸다.
최근의 대결양상이 어느 정도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위를 벌이는 대학생 측과 이들의 요구에 어떻게든 대응해야 하는 정부측 양쪽을 모두 살펴볼 필요가 있다.
10억인구의 중공에서 2만명정도의 대학생들에 의한 항의는 별것 아닌것처럼 들릴지 모른다. 중공인구의 4분의 1밖에 안되는 미국에 대학생이 1천2백만명이 넘는것과 비교해 볼때 중공은 겨우 1백4O만명의 대학생밖에 없다.
시위를 벌이는 대학생들은 거의 도시출신이고 8억의 농민계층을 대변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영향력을 고려하면 2만명이라는 숫자는 대단한 것이다.
얼마전 고위 중공당 간부의 아들과 대중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한적이 있었다.
이 젊은이는 중공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친족등용을 반대하는 학생들의 시위에 동감한다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바로 자신이 혜택을 받은 친족등용관습을 반대하는 것은 확실히 하나의 아이러니였다.
데모를 벌이고 있는 대학생들은 대학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미래를 약속받은 선택된 계층이다. 이들 대학생들이 바로 정부관료·공장간부, 그리고 영향력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아들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학생들의 배경을 생각하면 중공정부가 함부로 할수없는 어떤 제약요소를 이해할수 있게된다. 만약 중공정부가 강경조치를 취하게 되면 중공사회 지배계층의 자녀들이나 가까운 친척들이 희생대상이 된다.
시위대학생들은 확실히 중공사회가 경제계·관계·과학기술계의 미래지도자들로 기대하고 있는 계층속에 포함되고 있다. 결코 그들은 불순분자로 몰아 제거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테드·겁」WP지 북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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