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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작은 인연은 없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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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2호 29면

꽤 오래전의 일이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였다. 새해를 맞아 친구들과 함께 선물을 준비해서 한 고아원을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의 명동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안에 있던 고아원이었다. 물론 지금은 그 자리에 다른 건물이 들어서있다. 고아원 원장 수녀님의 안내에 따라 아이들이 모여 있는 큰 방으로 갔다. 거기에는 네댓살 밖에 안된 어린아이들이 수십 명이 모여 있었다. 너무 애처롭게 우리 일행을 쳐다보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우리를 경계해 가까이 오지도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함께 놀이를 하면서 우리에게 다가와 안기기도 하고 놀기도 했다.


저녁이 되어 고아원을 떠날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한 어린이가 나를 붙잡고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그 아이는 또 온다고 아무리 달래도 무작정 울며 발버둥쳤다. 우리 일행은 간신히 그 아이를 떼어 놓고 서둘러 그곳을 빠져 나왔다. 아이가 우는 울음소리를 뒤로 하고 가면서 우리 학생들도 눈물을 흘렸다. 세상에는 불쌍한 사람이 많이 있지만 태어나자마자 버림받은 어린 고아들처럼 불쌍한 사람이 또 있을까.


살아가면서 가끔 고아처럼 자신이 외롭다고 불쌍하게 느끼는 적이 있다.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 믿는 이의 배신, 친구들의 몰이해 등은 우리를 몹시 고독하게 한다. 사실 우리가 어렵고 고통스러울 때 혼자 있는 것, 아무도 나를 도와줄 이가 없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 고통스럽게 만든다.


이제까지 나에게 가장 행복했던 만남은 언제였나? 가장 아픈 이별은 또 언제였나? 그 만남과 이별은 나에게 무엇을 알려 주었던가? 인생은 만남과 이별의 반복이다. 우리는 수없는 만남과 이별로 행복과 고통, 슬픔을 경험한다. 만남으로 인한 행복이 강렬할수록 헤어짐에 대한 두려움과 고통은 크게 마련이다. 우리는 이렇듯 만남과 헤어짐을 경험하며 성숙한다. 또 그 과정에서 인간의 유한함과 인연의 한계를 깨닫게 된다.


아픔이야 시간이 지나면 약해지지만 이별은 기억 속에 오래도록 머문다. 때로는 이 아픈 기억이 위로가 될 때도 있다. 떠난 이의 빈자리를 통해 그 사람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깨닫게 되기도 하고, 과거에는 전혀 느낄 수도 알 수도 없었던 아름다움과 가치를 흐르는 시간이 말해 줄 때도 있다.


그래서 추억은 늘 아름답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이름도 아련한 이들과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이별, 설령 그것이 아프고 고통스러운 기억이라 하더라도 더 없이 소중하다. 그 모든 것이 우리 자신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일부를 차지한 그 기억은 중요한 교훈을 준다. ‘내가 살고 있는 지금, 발을 딛고 있는 바로 여기, 잠깐이라도 스친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가’ 하는 것을 말이다.


오래전 그날 고아원에서 내 소매를 붙잡고 울었던 그 아이는 지금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지금은 마흔을 넘은 중년이 되었을 것이다. 작은 인연도 결코 작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새삼스럽다. 가을이 깊어져서인가. 자주 옛 생각이 떠오른다.


허영엽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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