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 “어우 너무 힘들어 조사 못 받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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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

롯데그룹 비리를 수사 중인 검찰이 8일 창업주 신격호(94) 총괄회장을 조사했다. 서울중앙지검 롯데수사팀 검사 세 명과 수사관 두 명은 이날 오후 3시30분부터 서울 중구 롯데호텔 34층 집무실 옆 회의실에서 방문조사를 실시했다.

검찰 방문조사서 배임 등 혐의 부인
“절세하라고 했지 탈세 지시 안 해”
소환 불응 서미경 여권 무효화 조치

1시간30분가량 진행된 조사는 검사들이 돌아가며 질문을 하고 신 총괄회장이 짧게 답변을 하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검찰은 영상촬영 기사 두 명을 동원해 조사 과정을 동영상 카메라로 녹화했다. 조사 과정에서 신 총괄회장은 변호인의 도움을 받았다.

검찰은 신 총괄회장의 6000억원대 탈세 및 700억원대 배임 혐의를 입증하는 수사를 벌이고 있다. 그는 2006년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57)씨와 딸 신유미(33) 롯데호텔 고문, 맏딸 신영자(74)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에게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 6.2%를 페이퍼 컴퍼니 등을 통해 편법으로 넘겨주는 과정에서 양도세와 증여세를 납부하지 않도록 총괄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롯데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신 총괄회장은 조사에서 “절세를 하라고 했지 편법 증여나 탈세를 지시한 적은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롯데 관계자는 “총괄회장은 한 시간에 한 번 정도 화장실에 간다. 조사 중 두 번째로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총괄회장이 비서들에게 ‘어우 나는 이제 너무 힘들어서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해서 급히 혈압을 쟀더니 혈압이 많이 올라가 조사를 중단했다”고 말했다. 검찰에 따르면 그 뒤 신 총괄회장은 1시간가량 조서를 꼼꼼히 확인했다.

검찰은 서미경씨에 대해선 여권 무효화 조치에 들어갔다. 검찰은 그동안 변호인을 통해 서씨에게 귀국해 조사받으라고 수차례 요구했지만 귀국하지 않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7일부터 서씨에 대한 강제소환 절차에 착수했다. 법무부·외교부와 상의해 여권 말소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 머무는 서씨의 여권이 취소되면 불법체류자가 되기 때문에 일본 당국으로부터 강제추방을 당할 수 있다. 서씨는 신 총괄회장으로부터 지분을 증여받고서도 세금을 내지 않은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서씨가 일본에 머물면서 수사를 회피하는 것은 롯데 오너가의 준법정신 수준을 드러내는 상징적 사례다. 수사는 결코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일훈·송승환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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