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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제로 충돌 막았다 마산개헌대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마산=임시취재반】주말인 10일하오 경찰의 삼엄한 경계와 긴장속에 진행된 신민당의 마산대회는 행사가 끝난 뒤 일부 시위학생들이 각목을 휘두르며 화염병을 던지고 경찰이 최루탄을 쏘는 가벼운 충돌은 있었으나 별다른 사고없이 비교적 조용하게 끝났다.
이날 대회에서는 신민당 청년당원들이 학생들과 재야단체의 과격행동을 말리고 경찰도 과잉제지를 하지않는 등 불상사를 막기 위해 자제하는 노력이 두드러졌으며 시민들도 인천대회때와는 달리 큰탈없이 대회가 치러진 것을 무척 다행스러워 했다.
그러나 학생·재야단체들은 인천대회 때보다 양은 적지만 반미·반제와 신민당을 비난하는 구호 및 전단2만여장을 뿌렸으며 수배중인 박계동씨 등 민통련간부 20여명이 학생사위대 선두에서 한때 시위를 이끌어 관심을 끌었다.
경찰은 현판식이 끝난 직후 화염병을 던지고 각목을 휘두르던 학생 2백여명을 최루탄을 쏘아 강제해산시키고 학생29명·근로자6명 등 모두 42명을 연행, 이들중 10여명을 구속키로 했다.
◇가두 시위=하오4시35분쯤 결성대회를 끝낸 신민당당원과 시민·민통련등 재야단체 및 경남대·창원대·울산대·경상대학생등 모두1만5천여명이 현판식장인 신민당 강삼재 의원사무실까지 2km거리를 1시간동안에 걸쳐 『독재타도』등 구호를 외치며 가두시위를 벌였다.
학생과 재야단체·신민당 청년당원·신민당지도부·시민순으로 늘어선 시위행렬은 왕복6차선 차도와 양쪽 인도에 50∼60명씩 횡으로 늘어선채 7백여m의 행렬을 이루었다.
차도와 인도사이에 배치된 정복경찰은 시위대열을 거의 부동자세로 지켜봄으로써 행사가 끝날때까지 일제의 충돌을 피했다.
◇민통련 간부시위=하오 5시쯤 수배중인 박계동씨 등 민통련간부 20여명이 학생시위대에 나타나 선두에 나서 『군사독재 타도하고 민주정부 수립하자』『신민당은 각성하라』『이 행사는 신민당만의 행사가 아니다』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20여분동안 학생시위대를 이끌었다.
박씨등은 「민주통일 민중운동연합」이라고 쓴 대형플래카드를 앞세우고 시위를 하다 신민당청년당원들의 제지로 자취를 감췄다.

<"반정부·반미·신민각성" 구호>
◇학생시위=시위대중 2천5백명의 학생들은 『독재타도』『미제타도』『신민당은 각성하라』는 등 구호를 외치며 신민당행렬과는 별도의 시위를 벌이다 현판식이 끝난 하오 5시45분부터 강의원 사무실에서 50m쯤 떨어진 민정당 경남지부앞길까지 진출, 높이 10m의 투석방지용 그물을 앞세운 경찰과 충돌했다.
학생들은 처음엔 3백여명의 전경들과 몸싸움만을 벌였으나 일부 학생들이 차츰 격앙되기 시작, 화염병과 돌을 경찰쪽에 던졌다.
또 일부학생들은 경찰로부터 빼앗은 그물설치용 장대와 피키트에 사용됐던 각목 등으로 맨 앞줄의 전경들을 후려치기도 했다.
◇강제해산=시위가 격앙되자 대부분 학생이 빠져나가고 2백여명만이 화염병 등을 계속해 던지며 시위를 벌이자 경찰도 이에 맞서 하오6시20분쯤 이날 처음으로 최루탄 50여발을 쏘아 2∼3분만에 강제 해산시켰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인천기동대소속 선창규일경(24)등 경찰·전경 26명과 경남대 김수환군(22·행정과2년)등 학생3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수사=경남도경은 12일 이번 시위와 관련, 학생29명, 근로자 6명, 신민당원 1명, 무직 5명, 회사원 1명등 모두 42명을 10일 하오 연행, 조사를 끝내고 이중 시위주동자 및 적극가담자 9명 정도를 집시법·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등 혐의로 이날중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또 시위전력이 전혀 없거나 이지방 대학생 가운데 단순가담자 22뎡은 즉심에 회부하고 나머지 11명은 훈방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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