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금리 못 내릴 사정 있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경제기획원은 올해경제운용계획을 대폭 수정한 새로운 목표들을 제시하며 중요한 요소 하나를 빠뜨렸다. 이른바 「3저」시대의 이점을 활용해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의 배양」에 중점을 둔다면서, 그 중요한 요소의 하나인 금리를 지금대로 고율에 묶어놓았다.
경제계획의 수정은 그동안 계속되어온 일련의 중요한 내외 여건변화들을 수렴한다는 의미에서 필요한 작업이다.
수정된 경제운용계획의 줄거리를 살피면 대체적으로 경제운용의 환경을 지난 연말보다 그게 낙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경제성장률을 8백%로 늘려 잡은 점이나 국제수지전망을 당초의 균형에서 5억 달러 흑자로 수정한 점, 물가도 도매기준 2%하락을 점치고 있는 점등이 그것을 반증한다.
이같은 낙관 내지는 기대의 호전이 연초 이래의 지속적 원유가 하락, 엔화강세(달러약세), 그리고 국제금리의 현저한 인하추세 등 이른바 3저의 변화와 연관되어있다.
물론 3저 자체가 가져다주었거나 앞으로 가져다 줄 이득요인들을 계량적으로 파악하고 이를 경제전반에 연장 적용하는 일 자체는 잘한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만으로 충분치 않다는데 있다.
우선 경제성장률을 8%로 늘려 잡으면서도 그것을 직접 뒷받침할 설비투자와 수출의 촉진방향이나 수단들이 분명하게 제시되어있지 않다.
올들어 실천된 3저의 국내적 대응가운데 두드러진 것은 두 차례의 국내유가인하와 원화 환율의 실세화뿐이다.
두 차례의 국내 유가인하는 그런 대로 국내기업의 원가절감과 국내인플레 지정, 그리고 국제수지의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가 있었으나 대외경쟁력의 측면에서는 큰 개선이 아니었다. 두 차례의 인하가 다른 경쟁국들의 인하 폭에 비해 소극적이었고 그나마 전력·수송요금 등도 큰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경쟁력요소인 금리에서 오히려 환경이 악화되고 있는 것에 당혹하게 된다. 세계적으로 유가하락과 인플레 압력의 완화를 틈타서 각국이 다투어 금리인하를 서둘렀는데도 우리만 유일하게 연율11·5%라는 고금리체계를 고집하고 있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지금 같은 고금리체계로 어떻게 8%성장을 뒷받침할 투자와 수출경쟁력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인가. 무슨 명분을 대도 그것은 경제상식에 맞지 않는다. 세계 주요경쟁국들은 거의 예외 없이 70년대 이후 최저, 또는 2차 대전 이후 최저의 금리수준으로 내려갔다.
미국은 지난3월 이미 프라임 레이트를 78년이래 최저인 7%로 내렸고, 일본은 지난 80일 동안 무려 세 차례나 연거푸 재할인률을 인하, 연4%라는 전후 최저금리시대로 들어섰다.
서독·프랑스·영국 등 선진공업국들은 말할 것 없고 우리와는 직전경쟁국인 대만까지도 두 번의 인하를 통해 재할금리 4.75%, 우량대출금리 6.5%수준으로 내렸다. 더구나 일본은 조만간 제4차 금리인복까지 단행할 계획으로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부담하고 있는 금융비용은 보면 지난 20년 동안의 평균치로 총매출액의 5.7%쯤 된다. 이것은 일본의 2.5%, 미국의 2%, 서독·영국 1.5%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높은 수준이다. 같은 신흥공업국군의 일원인 대만의 3.9%보다도 물론 높다.
바깥사정이 이런데도 우리만 80년대초의 고금리수준을 유지할 경우 국제경쟁력의 약화는 심지의 사실이다. 당장의 경기회복에 필요한 수출산업, 중소기업의 투자촉진에도 도움이 안 된다. 특히 중소기업들은 제2금융권 금리마저 거꾸로 올라가는 추세여서 더 투자하기 어렵게되었다.
이런 상황들을 놓고 보면 우리나라 경제정책립안가들이 금리를 못 내리는 이유를 알 수 없다. 고금리를 고집할 특별한 사정이라도 있는가 묻고 싶다.
시설자금만이라도 최소한 대만 등의 경쟁국 수준으로 과감히 금리를 내리기를 다시 한번 촉구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