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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언론은 사회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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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오늘의 우리 언론은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이 말은 오늘의 우리 언론이 우리가살아가고 있는 환경에서 일어나고 있는 주요한 사건이나 현상을 정확하고 진실하며 공정하게 국민들에게 전달해 주지 못하고있으며, 그러한 사건이나 현상들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제대로 제시해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뿐만 아니라 오늘의 우리 언론은 다양한 사회집단들과 계층의 이해를 대변하지 못하고 언론기업 자신이나 혹은 특정 집단이나 특정 세력의 이익을 옹호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결과 고통받는 사람들의 처지가 외면 당하고 있으며 힘없는 가난한 사람들의 이익이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오늘의 우리 언론은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동시에 소수집단의 이익을 옹호해야 한다는 민주주의 제도의 미덕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며 다양한 사회집단들의 대표 상은 물론 우리 사회가 추구할 공통의 목표조차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와 같은 우리 언론의 현실은 국민들이 언론으로부터 소외당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우리 언론의 문제를 몇 가지 예를 들어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오늘의 우리 사회는 지난날에 비해 놀랄 만큼 분화되었다. 다양한 이익집단들과 결사체들이 생겼으며 사람들의 생각하는 방식과 생활양식도 다양해 졌다.

<커뮤니케이션 통로역할을 제대로 못해>
생활 수준과 지적수준도 크게 향상되었다. 그에 따라 사람들이 추구하는 목표와 지니고 있는 의견 및 충족하고자 하는 욕구도 다양해 졌다. 오늘의 우리사회는 50년대와 비교할 때 크게 변화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언론은 이 같은 사회의 구조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우리 언론은 여전히 50년대의 관행 속에 안주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판단은 아닐 것이다. 그 결과 오늘의 우리 언론은 국민들의 기대에 부용하지 못하고 있으며 다양한 집단들의 커뮤니케이션 통로로서 제구실을 못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다양한 집단들의 소리가 울려 퍼질 통로가 봉쇄된 셈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오히려 신문이나 방송을 대신하여 출판물이 그러한 통로 구실을 하게된 현상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지하신문 등도 이 같은 맥락 속에서 파악할 수 있겠다.
또한 우리 언론의 획일성은 이미 지적된 지 오래 되었으나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신문의 경우 지면의 구성과 제목, 내용뿐만 아니라 연재소설까지도 획일적인 성격을 띠고있다.
이러한 현상은 발행지면이 12면으로 고정되어 있다는데서 초래되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그것은 자기 합리화의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신문의 지면이 8면일 때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따라서 우리신문의 획일성의 원인은 지면의 면 수에 있지 않고 다른데 있다. 즉 여전한 일본신문의 모방, 기자단을 통한 취재기사의 풀 제, 우리 나라 신문 상호간의 모방과 동조가 획일성의 원인이라 하겠다.
또한 우리 언론의 전문성 결여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의 전문성은 신문의 경우 더욱 크게 요청되는 추세가 오늘의 현실이다. 그 까닭은 신문이 심층보도를 해야만 할 필요성 때문이다. 즉 텔리비전 뉴스에 대한 의존도가 점차 높아감에 따라 신문은 심층보도로써 전통적인 언론매체의 위치를 확보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 신문은 심층보도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 신문이 아직 전문 직업화되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우수한 인재를 받아들여 소모품으로 부림으로써 지식의 축적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우리신문의 현실이다. 다시 말해우리 신문사들은 기자로 하여금 전문직업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지 않고 있다.
따라서 우리신문의 보도기사를 비롯해 해설기사나 논평은 어떤 사건이나 현상을 피상적으로 다룰 뿐 축적된 지식과 다양한 관점을 토대로 본질을 파헤치는 깊이 있는 내용을 독자들에게 제공하지 못한다. 그 같은 예로 필리핀사태에 대한 보도나 해설 및 논평을 들 수 있다.
필리핀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전반에 걸친 지식의 축적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 신문은 외신에 크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피상적인 기사로 지면을 채우거나 혹은 해설이나 논평도 사태의 본질에 이르지 못했다.
이와 같은 우리 언론의 비전문화는 기자들의 조로 현상과 길이 연관되어 있다.
한편 오늘의 우리 언론이 지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어쩌면 공정성의 결여에 있는지도 모른다. 논쟁적인 성격을 띤 주요관심사에 대한 우리 언론의 보도나 해설은 매우 편파적이다.
특히 이러한 성향은 공영방송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찬반의견이 있을 수 있고 다양한 관점이 제시되어야 마땅할 주요 관심사에 대해 탤리비전은 일방적인 의견이나 관점을 제시하고 이를 받아들일 것을 강요한다.

<획일성의 원인은 모방과 기사 풀 제>
때로는 해설자가 시청자위에 군림하는 자세로 특정 의견을 설파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이 같은 관행은 말할 것도 없이 국민을 조작의 대상으로 보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공영방송의 전파는 국민의 공유재산이며 공영방송은 시청자의 시청료로 운영된다. 그러므로 공영방송은 사기업인 신문과 달라 국민이 주인인 것이다. 그럼에도 공영방송이 편파적인 보도를 하고 일방적인 의견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함으로써 주인인 국민을 객체화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하겠다.
공정성과 관련해 볼 때 오늘의 우리 언론에서 뉴스와 의견을 분리해 본다는 것은 이제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하는 일이 되었다. 사실보도 자체가 곧 특정관점을 준거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언론이 갈수록 통조림처럼 가공된 뉴스에 크게 의존하게 됨으로써 공정성은 더욱 더 기대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이와 같이 언론이 공정성을 잃게 됨에 따라 우리 나라 언론의 공신력은 크게 떨어지게 되었다. 그 결과 사회의 불신풍조는 깊어지고 언론의 사회통합기능은 마비되기에 이르렀다. 유언비어의 온상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우리 언론은 또한 상업주의를 추구하는 나머지 선정주의에 빠져 있다. 최근에 있었던 신상옥·최은희 두 사람의 탈출사건보도가 그러한 본보기가 될 것이다.
언론의 선정주의는 사건의 진상과 의미를 덮어버리고 값싼 흥미에 영합함으로써 국민을 그릇되게 인도한다.
이러한 선정주의 탓으로 우리언론은 마치 빨리 달아오르고 빨리 식는 양은 남비처럼 되었다.
우리언론은 또 과거부터 지금까지 국제뉴스의 보도나 해설과 논평에 있어 강대국의 관점을 그대로 받아들여왔다. 그것은 언론이 강대국, 특히 미국의 신문이나 통신에 크게 의존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국제정세를 보는 눈은 강대국의 이익과 결부된 것으로 주조되었을 뿐 우리의 국가이익의 관점으로 개안되지 못하였다. 국제정세에 대한해설이나 논평을 외국인 필자의 칼럼이나 기고로 대신한다거나 외국의 신문이나 통신을 우리의 관점으로 거르지 않고 그대로 전재함으로써 우리는 국제관계를 다른 나라의 이익과 결부된 눈을 통해 보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리비아사태에 대한 보도에서도 이 같은 경험을 한바있다. 미국의 통신사가 제공하는 뉴스를 주로 점함으로써 리비아사태를 보는 우리의 관점은 미국의 국익에 편향된 것으로 형성되었으며 「카다피」 대통령을 희화한 보도를 접함으로써 리비아에 대한 우리의 진정한 이해가 왜곡되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우리언론의 관행은 언론의 사대주의이며 신 국제정보 질서에서 논의되는 언론의 종속현상인 것이다.
이상과 같은 우리 언론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보다 성숙된 언론이 되기 위해 해야만 할 일들이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성취되어야 할 과제는 언로의 개방이다.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이 특수하다 할지라도 언론이 즉각적인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 한 언론은 자유로와야 한다. 어떤 경우 건 헌법에 보장된 언론의 자유는 규범으로 존중되고 실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언론의 책임을 강조한 나머지 오히려 언론의 자유를 구속하는 언론 기본법조항은 개정되거나 페지 되어야 하겠다.
또한 우리 언론은 획일성에서 탈피하기 위해 모방과 동조의 관행에서 벗어나야 하며 취재장치를 개조하여 자유경쟁에 입각한 취재를 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12면으로 묶여있는 지면 카르텔에서도 벗어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언론기본법을 개정하여 지방주재기자제도가 부활 되어야할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대기자제도 등 정립 신분보장 이뤄져야>
한편 언론의 전문화를 위해 신문사는 기자들에게 많은 투자를 해야할 것이다. 인력을 증가하고 안식년제도 등을 도입하여 기자들의 연수기회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기자들의 조로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대기자제도 등을 정립하고 직업으로서의 기자직을 보장하는 장치가 신문사마다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요컨대 기자의 직업상 신분보장이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하겠다.
성숙한 언론은 양은 남비같이 빨리 달아오르고 빨리 식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이와 함께 우리 언론은 국제관계를 다룸에 있어 주체성을 회복해야만 하겠다. 이 말은 우리언론이 배타적인 국수주의 언론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국민이 언론의 주체가 되는 일이다. 이를 위해 언론은 국민을 어떠한 의미에서건 조작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언론은 국민의 언론에 대한 접근의 권리를 보장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곧 언론이 여러 계층의 국민과 다양한 집단들의 이익을 골고루 대변함으로써 성취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언론은 소수집단의 이익을 옹호하는 미덕을 갖추어야한다. 공정하고 정확하며 진실한 보도를 통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일 역시 국민을 언론의 주체로 인식하는 태도의 반영이 될 것이다.
끝으로 현재 논의되고 있는 케이블 텔리비전의 도입은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부연하고자 한다. 새로운 매체의도임이 값싼 상업주의 대중문화나 양산하거나 아니면 또 다른 인간소외의 매체를 만들어 내는 꼴이 되어서는 안되겠기 때문이다.

<참석자>
◆송복 (연세대교수·사회학)
◆유재천 (서강대교수·신문 방송 학·대표집필)
◆이상희 (서울대교수·신문 방송 학)
◆팽원순 (한양대교수·신문 방송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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