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M] '괴물’처럼…사회비판+스펙터클+가족애가 흥행 정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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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

‘부산행’이 올해 첫 1000만 영화로 등극했다. 의문의 바이러스로 사람들이 좀비로 변해가는 가운데 부산행 KTX 열차에 올라탄 이들의 사투를 그린 재난 영화다. 독립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이름난 연상호(38) 감독의 장편 실사 영화 데뷔작. 좀비를 전면에 내세운 상업 영화는 국내 첫 시도지만, 관객 호응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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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극장 관객 수가 매년 증가해 ‘1000만’이란 숫자의 감흥은 예전같지 않지만, 한국 사회의 공기를 감지할 수 있는 지표라는 점에서 이 숫자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간 한국 사회를 웃기고 울린 ‘1000만 영화’의 흥행 공식을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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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1000만 영화 ‘실미도’

◆‘공감과 오락성’ 흥행 최대 동력=‘부산행’은 생존 싸움에서 극단 이기주의로 치닫는 인간을 집요하게 파헤쳤다. 영화평론가 강유정씨는 그 점이 흥행의 가장 큰 요인이었다고 풀이한다. “좀비보다 더 무서운 사람을 통해 점점 더 잔혹해지고 있는 세상살이를 묘사, 결국 공감을 끌어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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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괴수 영화 ‘괴물’

이는 지금껏 1000만 관객을 모은 영화들의 가장 큰 공통점이다. 괴수 영화의 외피를 빌려 우리의 치부를 그린 ‘괴물’, 사극 장르 안에 현실을 녹인 ‘광해, 왕이 된 남자’와 ‘왕의 남자’, 인간성을 잃은 재벌을 처단하는 ‘베테랑’, 실존 인물을 내세워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물었던 ‘변호인’이 그랬다. 애국·국가주의 담론을 깐 ‘명량’과 ‘국제시장’도 한국 사회에 대한 질문을 담았다. 사회 현실에 대한 불만과 비판이 흥행의 가장 큰 동력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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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흥행 1위인 ‘명량’

여기에 충분한 오락성과 상업영화의 스펙터클함이 필수적이다. 최근 개봉한 1000만 영화들의 제작비가 100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이유다. ‘명량’ ‘암살’은 각각 180억원이 들었고, ‘부산행’ 또한 115억원이 들었다. 영화평론가 김형석씨는 “‘부산행’의 스케일, 스펙터클한 면도 흥행의 중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광해’ ‘베테랑’ ‘해운대’ ‘변호인’등
우리사회 치부 파헤쳐 공감 끌어내
중장년층 유인할 눈물·웃음 필수
도둑·재난·좀비…소재 발굴도 한몫

또 하나는 가족주의다. ‘국제시장’ ‘7번방의 선물’ ‘해운대’ 그리고 ‘부산행’의 공통점은 바로 가족애를 이야기의 핵심에 배치했다는 사실이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강유정 평론가) 이들이 주인공인 이들 영화는 눈물과 웃음을 버무려 극장을 잘 찾지 않는 중장년층 관객까지 그러모았다. 일단 관객이 들기 시작하면 SNS 등을 통해 입소문이 퍼져나갔고, 이에 의지한 집단주의적 소비 패턴 또한 1000만 영화를 만드는 데 톡톡히 한 몫을 했다. 영화 흥행이 사회 이슈가 되고, 사회적 화제에서 소외되기 싫어 흥행 영화를 관람하는 방식의 소비다.

대형 투자배급사의 공격적인 마케팅 또한 1000만 영화를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만 논란 거리인 것도 사실이다. 대작의 스크린 독과점은 비판받은 지 오래며, ‘부산행’은 유료 시사회를 핑계 삼은 변칙 개봉이 문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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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적 쾌감과 애국주의 버무린 ‘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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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장르에 도전=관객의 눈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요즘은 대기업의 투자, 안정적인 기획에만 머물러선 결코 ‘1000만’이란 벽을 뚫을 수 없다. 연상호 감독은 “좀비가 대중적 소재가 아니어서 걱정했는데 오히려 신선하게 느낀 관객이 많은 것 같다”고 자평했다.

김형석씨는 “다양한 경로로 여러 콘텐트를 접하는 요즘 관객은 국내에서 시도되지 않은 장르에도 준비돼 있다. 한국에 없던 스케일의 케이퍼무비 ‘도둑들’, 재난 영화 ‘해운대’의 성공이 그런 경우”라고 설명했다. ‘암살’ 또한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는 흥행에 실패한다’는 암묵적 징크스를 깨고 케이퍼무비와 애국주의를 버무린 과감한 시도를 한 덕에 1000만 반열에 올랐다.

‘부산행’은 더 나아갔다. 역대 어느 1000만 영화와 비교해 봐도 장르적 포인트가 가장 명확하다. “온 사회에 만연한 극단 이기주의를 그 어느 영화보다도 세밀히 묘사했다”(강유정 평론가)는 평도 나왔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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