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합의 반대” 외치며 호신용 스프레이 뿌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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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간 ‘12·28 위안부 합의’에 따라 위안부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출범한 ‘화해·치유 재단’이 시작부터 폭력 사태로 얼룩졌다.

20대 남성, 김태현 이사장 공격
얼굴에 맞은 김 이사장 병원 후송
“10억 엔, 소녀상 철거와 관련 없어”

이 재단의 김태현(성신여대 명예교수) 이사장은 28일 오후 12시20분쯤 서울 중구 순화동의 사무실에서 재단 출범 기자간담회를 마치고 나오다 신모(21)씨가 뿌린 ‘캡사이신’에 맞았다. 신씨는 건물 밖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다가 김 이사장이 나타나자 갑자기 “한·일 합의에 반대한다”는 구호를 외치며 달려들어 호신용 액체 캡사이신을 김 이사장 얼굴에 뿌렸다. 고통을 호소하던 김 이사장은 구급차에 실려 인근 병원으로 후송돼 2시간여 동안 응급처치를 받았다. 김 이사장과 함께 있다 캡사이신을 맞은 여성가족부 직원 3명도 병원 치료를 받았다.

현장에서 검거된 신씨는 경찰 조사에서 “한·일 합의 자체가 피해 할머니들에게 적대행위이고 그런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범행 동기를 진술했다. 경찰은 신씨가 특정 단체 소속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으며 특수상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이날 간담회 직전 대학생 10여 명이 행사장에 난입해 30분 동안 단상을 점거하고 농성을 하는 소동도 벌어졌다. 이들은 “피해자를 기만하는 재단 설립을 중단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처럼 아직도 만만찮은 12·28 합의 반대 여론이 재단이 풀어야 할 가장 큰 과제로 떠올랐다.

이날 재단이 출범한 건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재단 예산으로 10억 엔(약 107억원)을 내기로 약속한 지 213일 만이다. 김 이사장은 간담회에서 “재단 설립 준비 과정에서 (현재 생존 피해자 40명 중) 할머니 37분을 만나 어떻게 지원해야 마음의 위로를 받으실지 이야기를 들었다. 그에 따라 맞춤형 지원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재단 설립의 목적은 피해자의 상처 치유와 존엄 회복이고 (10억 엔은) 이런 목적이 아닌 곳에는 사용할 수도 없고 사용하지도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외교부 당국자는 “기념관 건립 등 상징적인 추도사업보다는 피해자들에게 직접 혜택이 돌아가는 사업을 최대화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김 이사장은 일본이 주한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 철거를 주장하는 것에 대해선 “소녀상과 연계해 10억 엔이 오느냐 마느냐 하는 게 절대 아니다. 합의 내용을 봐도 소녀상과 10억 엔을 주는 것은 전혀 별개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김 이사장은 또 “(재단에 반대하는 분들에게) 계속 찾아가고 성심성의껏 다가가서 어떻게 상처를 치유해드릴 수 있을지 방법을 찾아내면 언젠가는 저희와 함께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10억 엔의 용도에 대한 한·일 정부의 시각차도 갈등의 불씨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날 일본 정부 관계자 등이 “출연금의 용도가 미래지향적이지 않다면 돈을 낼 수 없다. 재단 정관에 미래지향적인 내용이 들어 있지 않아 조정하겠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미래지향적인 의미를 담기 위해 이미 재단 이름에 ‘용서’가 아닌 ‘화해’를 쓰지 않았느냐”며 “정관은 이미 확정됐고 수정이란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유지혜·정진우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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