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생 집단 부정시험 망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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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 있는 미국계 국제학교(JIS)에 다니는 한국인 고교생들이 학기말 시험지를 통째로 훔쳐 시험을 치른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관련 학생은 모두 26명이며 이들 중 13명은 자퇴처리됐다. 한국 학생들이 외국 소재 학교에서 부정시험에 무더기로 연루된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

20일 인도네시아 주재 한국대사관 등에 따르면 JIS 10학년(고교 1년)에 재학 중인 한국인 학생들이 지난달 초 JIS 경비원들을 매수해 학교 교무실에 보관 중이던 학기말 시험 문제지를 빼돌렸다.

이들은 시험 문제지를 복사해 나눠가진 뒤 사설학원 강사 등의 도움으로 정답을 알아내 학교 시험에서 만점을 포함한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학교 측은 한국인 학생 대부분이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이 이상하다고 판단해 학생들과 개별면담을 하는 과정에서 시험지가 유출된 사실을 알아냈다.

한국대사관 유기연 참사관 겸 영사는 "이 사건에 관련된 한국인 학생 26명 가운데 경비원을 매수하거나 시험지를 배포한 학생 13명이 학교 측으로부터 자퇴를 종용받고 학교를 떠났으며, 시험지를 단순히 참고한 13명은 정학 처분을 당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상사 주재원이나 현지 교민들의 자녀▶국내 대학 특례입학을 목적으로 부모와 함께 현지에 일시 체류 중인 학생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국내 대학 진학을 위해 매일 방과 후 사설학원에 다니거나 개인 과외수업을 받느라 학교 수업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기말시험에서 낙제, 유급당할 것을 우려해 시험지를 훔쳤다는 것이다.

JIS의 경우 학기 중 퀴즈와 발표, 기말시험 등을 합산해 산정하는 매학기 학력평가에서 F학점을 받은 학생에게는 다음 학기에 해당 과목을 다시 이수하도록 하고 있어 자칫하면 정상 졸업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유참사관은 "교민 사회에서 쉬쉬하고 있어 자퇴한 학생들이 한국으로 귀국했는지는 파악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부 학생은 자카르타 소재 한국국제학교(JIKS) 등 다른 학교로 전학하려 하나 해당 학교 학부모들이 물을 흐린다며 반대하는 등 이래저래 국제적으로 망신스러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교육인적자원부 관계자는"한국.한글학교가 아닌 국제학교 관련 사건이어서 본국에 사건 내용이 보고되지 않았다"면서 "외국어 실력 등이 부족한 학생들을 국내 대학에 손쉽게 입학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무리하게 국제학교에 다니게 한 것도 이 같은 사건을 초래한 요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김남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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