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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영화천국] '헐크 바지' 야릇한 상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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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면

Q: 지난 주말 '헐크'를 봤다. 어렸을 적부터 궁금하던 건데 헐크로 변할 때 왜 바지만은 찢어지지 않나.

A: 기자도 어렸을 때 수많은 '헐크'팬들처럼 다른 옷은 다 뜯어지는데 유독 바지만 멀쩡한데 대해 강한 호기심을 품은 바 있다. TV 시리즈 '두 얼굴의 사나이'에서 루 페리뇨가 연기한 헐크의 윗옷은 두두둑 소리를 내며 뜯겨나가지만 청바지는 단이 너덜너덜하게 찢어지며 누더기가 되는 정도에 그친다.

이에 대한 '다수설'은 TV에선 심한 노출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청바지가 찢어지면 그 안에 입은 팬티도 찢어져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TV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장면이 돼버린다는 주장이다.

'소수설'은 헐크의 청바지가 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찢어지지 않는 특수 소재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헐크의 청바지가 보라색 스판덱스 바지로 바뀐다. 스판덱스는 수영복을 만드는 소재로 잘 알려진 섬유다.

영화 속에서 헐크는 정상인 브루스 배너(에릭 바나)였을 때 1백90㎝였다가 변신하면 삽시간에 5m까지 커진다. 두 배가 넘게 커지는 것이다. 이는 스판덱스라는 섬유의 특성을 알면 수긍이 간다. 스판덱스는 쉽사리 끊어지지 않고 5백%에서 7백%까지 늘어난다고 한다. 그러니 영화는 말이 되는 셈이지만 TV 시리즈의 청바지가 스판덱스라는 건 좀 구차한 설명이다.

이러한 의구심을 20년 넘게 간직해온 기자는 지난달 초 로스앤젤레스에서 '헐크'를 연출한 리안 감독을 만났을 때 마지막 질문으로 바지 얘기를 꺼냈다. 인터뷰 내내 차분한 태도로 임하던 리안 감독은 통역에게서 질문을 듣자마자 폭소를 터뜨렸다. "'헐크'와 관련해 3백여회의 인터뷰를 했는데 여성 기자들은 꼭 그 질문을 빼놓지 않더라."(헉!)

그러면서 그는 "미국의 경우 PG-13(13세 이하 청소년은 부모와 동반관람할 것)등급을 받아야 하니까 헐크의 벌거벗은 모습을 넣을 수 없었다"며 "TV 시리즈도 동일한 이유 아니었겠느냐"고 답했다. 흥행 때문에 성기 노출 장면을 넣을 수 없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리안 감독은 촬영 당시 제작한 스토리 보드에는 변신하는 헐크를 나체로 그렸다고 했다. 감독 소견에도 바지가 찢어지는 게 자연스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리얼리티냐 흥행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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