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탄' 등극 위한 행보하는 터키 대통령 에르도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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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터키 대통령) [중앙포토]

터키 정부가 20일(현지시간) 3개월 동안의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쿠데타가 실패로 끝난 지 나흘 만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이날 국가안전보장회의와 내각 회의를 거쳐 이같이 결정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국영TV를 통해 방송된 기자회견에서 “비상사태 선포는 쿠데타에 개입한 테러 조직을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한 것”이라며 “민주주의와 법치, 시민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위협을 최대한 빨리 제거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또 “군대와 정부 기관에 암처럼 퍼져있는 바이러스를 계속 제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대규모 숙청을 비판하는 국제사회에 대해서도 “유럽에서 테러 공격이 발생하면 특별 조치를 취하지 않느냐”며 “우리를 비판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터키 헌법은 자연재해, 심각한 경제 위기, 폭력 행위로 공공질서가 심각하게 훼손됐을 때 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비상사태가 선포되면 의회의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하고, 내각은 법률에 해당하는 효력을 가진 법령을 발표할 수 있다. 터키 의회는 집권당인 정의개발당(AKP)이 과반을 확보하고 있어 손쉽게 의회를 통과할 전망이다.

향후 석 달 간의 국가비상사태 하의 터키에서 국민의 기본권은 제한되고, 에르도안 대통령은 법령에 따라 광범위한 통치권을 갖는다. 통행 금지가 실시되고 회합·집회가 금지된다. 정보 요원은 시민·차량·가택에 대해 수색할 수 있다. 당분간 에르도안 대통령은 그의 별명인 ‘술탄(이슬람제국 최고 통치자)’에 버금가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게 된다.

그럼에도 에르도안 대통령은 비상사태 선포 직전 알자지라와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는 민주주의 의회 시스템 안에 머물 것이며, 이 원칙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겠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그러나 국가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도 말했다. 쿠데타 가담 혐의가 있는 이들에 대한 체포가 이어질 수 있다고 시사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터키 정보당국은 쿠데타에 개입한 인원을 약 1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는 일련의 조치들을 ‘술탄’으로 등극하기 위한 에르도안 대통령의 행보로 보고 있다. 알자지라는 20일 “에르도안 대통령이 반대파에 대한 탄압을 정당화하기 위해 쿠데타를 이용하고 있다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고 전했다. WP도 “에르도안 대통령이 일당 체제 수립을 향해 한 발 내디뎠다”는 분석을 전했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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