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포럼] ‘相生’시험치는 검찰과 권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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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수틀린다고 쉽게 갈라서는 부부도 있지만 참고 사는 부부가 더 많다. 얼마 전 읽은 소설책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프랑스 작가 안나 가발디가 쓴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라는 소설이다. "방금 커다란 돌덩이 하나를 들어올렸다가 곧바로 다시 내려놓은 느낌이 들었다. 돌덩이 아래 우글거리는 것들이 너무나 흉측했기 때문이다."(문학세계사.이세욱 역)

남편 피에르의 부정을 눈치챈 쉬잔은 이혼을 결심하고 돌덩이를 들어올리지만 끝내 내치지 못하고 도로 내려놓는다. 부부라는 반듯한 외피에 가려진 일상의 구질구질함이 너무나 흉물스러워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하루에도 몇번씩 이혼을 결심했다가도 결국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마는 사람들의 심정이 그럴 듯싶다. 그걸 관습이라고 한다면 관습은 역겹지만 안락한 것이다.

집권당 대표의 목을 노린 검찰의 포위망이 점점 조여들고 있다. '법대로'를 외치는 검찰의 속내가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권력의 시녀'라는 오명과 영원히 작별하겠다고 어금니를 문 것인지, 그저 해보는 제스처인지, 청와대와 짜고 치는 고스톱인지…알지 못한다.

검찰이 들어올린 돌덩이가 어디로 향할지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옛날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슬며시 제자리에 다시 내려놓고는 관습의 안락함으로 돌아갈지, 치켜든 돌덩이를 내동댕이쳐 각자 제 갈 길로 가는 건지, 그것이 궁금할 뿐이다.

피해자만 3천여명에 피해액이 3천5백억원에 달하는 굿모닝시티 쇼핑몰 분양 사기 사건의 불똥이 정대철(鄭大哲)민주당 대표와 민주당 대선자금 논란으로 옮겨 붙으면서 굿모닝 게이트는 우리 사회의 온갖 구린내가 진동하는 권력형 스캔들의 구색을 두루 갖춰가고 있다.

예상치 못한 비리 연루자가 고구마 줄기 캐듯 줄줄이 엮여 나오면서 그 파장이 어디까지 갈지 가늠키 어렵다. 들어올린 돌덩이 아래 우글거리는 것들이 하도 지저분해 차라리 대충 덮어버리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대통령 선거를 포함해 모두 일곱번의 선거를 치러본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은 "돈 문제만 생각하면 정치하기가 두려워진다"고 실토한 바 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져 백수로 지내던 1994년 출간한 '여보, 나좀 도와줘'(도서출판 새터)에서 그는 "불법이 명백한 일인 데도 시비 걸고 따지는 것이 오히려 우습게 보일"정도로 정치권에 돈을 둘러싼 비리가 만연해 있다고 개탄했다.

'희망 돼지저금통'으로 선거혁명을 이뤄냈다는 자부심을 입증하려면 스스로 민주당 대선자금부터 까보이는 것이 이치에 맞다. 정치자금 관련법 개정은 그 다음이다.

대형 정치자금 스캔들과 검찰의 사정(司正)혁명이 짝을 이룬 한바탕 씻김굿이 있고 난 뒤에야 비로소 정치권의 고질적인 부패가 꼬리를 내리기 시작했음을 외국 사례들은 보여주고 있다.

이탈리아의 정치개혁 뒤에는 밀라노 검사들의 '마니 풀리테' 운동이 있었고, 프랑스의 정치개혁 뒤에는 위르바 스캔들과 이를 물고 늘어진 예심판사들의 결기가 있었다. 일본에서는 도쿄(東京)지검 특수부의 사가와 규빈 스캔들 수사가 있었다.

악취나는 굿모닝 스캔들을 정치개혁과 검찰개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는 것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검찰과 권력은 '공생의 룰'을 깨고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 청와대는 엄정중립을 지키고, 검찰은 들어올린 돌덩이를 미련없이 내동댕이칠 때 그 길은 열릴 것이다.

배명복 기획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