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5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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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왕릉주변은 숨막히는 긴장과 흥분의 연속이었다. 발굴반은 운집하는 주민들을 피하여 뜬눈으로 밤을 꼬박 새웠다. 드디어 하오 4시 연도 (연도) 문의 전돌을 헐어 왕릉을 개봉하자 그 속에서 허연 김이 무럭무럭 뿜어져 나왔다…. 』
71년 7욀9일자 도하의 각 신문은 한 왕릉의 발굴기사를 이런 감격과 흥분으로 리드를 썼다. 실로 1천5백년만의 긴 잠에서 깨어난 백제 무령왕릉에 관한 첫 보도다.
일본작가 「이노우에· 야스시」 (정상정) 의 『돈황』 이라는 소설이 있다. 돈황은 중국의 서북변경 감숙성에 있는 도시로 중국본토와 서역· 중앙아시아를 잇는 요충. 유명한 실크 로드도 여기서 시작된다.
이 돈황이 1037년께 서하의 침략으로 폐허가 되다시피 했는데, 놀랍게도 1907년 이 도시의 천불동에 있는 한 석굴에서 4만여권의 불경이 쏟아져 나왔다. 이곳을 답사하던 영국 탐험대가 발견한 것이다. 이 경전들은 오늘날 불교연구에 더할 수 없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노우에·야스시」는 서하의 병화를 피해 그 많은 경전을 그 곳에 숨긴 조항덕이란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이 감동적인 소설을 썼다.
무령왕릉이나 돈황석굴은 어느 의미에서 시간을 초월한 타임캡슐이라 할 수 있다.
중앙일보는 17일 역사적인 「85 타임캡슐」을 땅에 묻는다.
길이 2m40cm, 지름 36cm의 3중 특수 스테인리스 용기에는 태극기, 국어사전, 컬러TV, 256KD램은 물론 비디오에 수록한 TV드라머, 다큐멘터리, 각종 예술작품들, 생활용품들, 각종 통계자료, 심지어 8도 사투리를 담은 녹음 테이프까지 수장되어 있다. 우리 시대 삶의 질과 양이 모두 그 속에 들어있는 것이다.
이 「85 타임캡슐」 은 5백년 후에 개봉토록 돼 있다. 2485년이다. 그때 이것을 발굴할 우리의 후손들을 한번 상상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그들은 선조들이 쓰던 이런 물건을 보고 유치하다고 웃을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무령왕릉이나 돈황경전을 보고 감격한 것처럼 흥분하고 감동할 것인가.
우리 역사에서 5백년 전은 1485년, 조선조 성종16년에 해당한다. 이해 기록을 보면 왜 동 철을 궁 무 하게 하고 상인들에게 왜인과의 상시를 허가했다. 또 서거정의 신편 『동국통감』이 편찬되었다. 서양사에서는 장미전쟁이 끝나고 영국의 「헨리」 7세가 즉위, 튜더왕조가 시작된 해다.
그러나 지나간 5백년보다 다가올 5백년은 그 변화가 더욱 가속될 것이다. 타임캡슐은 후손들에게 자랑스런 「유산」 을 물려주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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