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단체 “북한 영화 배경음악으로 쓰여” 반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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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째 논란, 임을 위한 행진곡



5·18 기념식 때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할지, 합창할지를 둘러싼 논란은 2009년부터 8년째 되풀이되고 있다.

DJ·노무현 정부 때 공식행사 제창
2009년부터 식전행사 합창으로
“정부 기념식 주먹 쥐고 제창 부적절”

논란의 뿌리는 깊다. 이 노래는 원래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숨진 윤상원 열사와 야학 후배 박기순의 영혼 결혼식을 위해 만들어졌다. 소설가 황석영씨가 82년 4월 백기완씨의 시 ‘묏비나리’에서 차용해 가사를 쓰고 당시 전남대생 김종률씨가 작곡했다. 이후 학생·재야단체의 민주화운동 집회·시위현장에서 함께 부르는 노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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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정부 말기인 97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국가기념일이 된 후에는 노무현 정부를 거쳐 2008년까지 12년간 정부가 주최한 공식 기념식의 식순에 포함돼 ‘제창’됐다. 노무현 대통령이 매년 기념식에 참석해 이 노래를 가사도 보지 않은 채 주먹을 쥔 채 위아래로 흔들며 불러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 출범 2년차인 2009년에 불거졌다. 이 대통령도 첫해 기념식엔 참석해 함께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이후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촛불시위 여파로 진보·보수단체 간 이념 대결이 극심해졌다. 이때 보수단체의 표적이 된 게 ‘임을 위한 행진곡’이었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2008년 정부 기념행사 직후부터 보훈·안보단체에서 “특정단체들이 ‘민중의례’ 때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묵념하지 않고 민주열사에 묵념하며 애국가 대신 부르는 노래를 대통령이 참석하는 정부 기념식에서 주먹을 쥐고 흔들며 제창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당시 보수단체들은 작사자인 황석영씨의 89년 밀입북 행적도 문제 삼았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황석영, 리춘구(북한)가 시나리오를 공동 집필해 91년 제작한 북한의 5·18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게 단초였다. 노래 제목과 가사에 나오는 ‘임’과 ‘새 날’이 김일성 주석과 사회주의혁명을 의미하는 것이란 논란이 있어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양립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 같은 주장이 널리 퍼지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북한 가요라고 잘못 알려지면서 여론이 악화됐다”고 말했다.

국가보훈처(당시 김양 처장)는 이를 근거로 2009년 ‘임을 위한 행진곡’을 공식 식순에서 뺀 뒤 식전행사 합창단 공연으로 돌려버렸다. 그러자 광주 5·18 유가족회를 포함한 시민단체들이 반발해 광주 금남로 등에서 별도의 5·18 기념식을 여는 등 ‘반쪽 기념식’ 논란까지 생겼다.

이후 국회가 나서 2013년 6월 여야 국회의원 158명의 찬성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공식 기념곡으로 지정하라는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지만 보훈처는 ‘제창 불가’ 입장을 고수했다.

서울대 한정훈(정치학) 교수는 “5·18 민주화운동이 국가기념일이 된 지 20년인데 정부가 낡은 이념대결의 틀에 갇혀 오히려 국민통합을 가로막고 있는 셈”이 라고 말했다.

정효식·박가영 기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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