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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안좋을 땐 「역의 발상」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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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옛날 어느 끗발있는 경제팀장은 아래서 해오는 것이 마음에 안들면, 『야, 지금 당장 나가서 기획원 돌담에 콱부딪쳐 봐라. 너같이 나쁜머리는 충격을 받아 혹시 좋아질지 아느냐』 고 호통을 치곤했다.
그때만해도 목가적인 세상이이서 그런 거친말도 옷음으로 통했는데 곰곰 생각해보면 요새말로 발상외 전환을 요구한게 아닌가 싶다.
정 안풀릴 땐 한번 거꾸로 생각해 보란 말이 있다.
소위 전문가들이 기성 관념의 즢에시 허위적거릴 때 아마추어들이 한줄기 섬광 같은 상식으로 활로를 찾을 수가 있다.
역사상 위대한 업적에 그런 일이 많다. 달걀을 바로 세운 것은 항해가「콜롬부스」였고, 트로이의 유적은 향료상 「슐리만」이 찾았으며, 고대 설형문자의 수천년 신비는 한 아마추어 외교가가 풀었다.
일본의 주택혁명을 일으킨 미사와 조립주택 개발은 한 업무사원이 이룩했고, 우리의 정부고속도로나 포항제철, 또 최근의 한자리 물가도 전문가들은 안될 것이라고 한 것이었다.
요즘 경기논쟁을 보노라면 정말 역전의 발상이 필요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경기가 안좋다니, 괜찮다니하고 뭇사람들이 한입씩 거드는 통에 온 세상이 버끌찌근하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오늘의 경제상황은 온갖것이 복잡하게 꾜이고 얽힌게 돼서 천하없는 경제 전문가라도 이거다 하고 묘방을 내기가 어렵게 되어있다.
경기 토론회 같은 것도 개미 쳇바퀴돌듯 뱅뱅 돌수밖에 없다. 지금이 불황의 단계냐, 아니냐 하느덴 말들이 많지마 경제가 어렵다는덴 생각들이 같은 것 같다. 내몫을 더 내놓으라는 요구가 크게 번지는데 그걸 감당할 경제력은 턱도 없다. 앞으로는 더할 것이다.
『좋아졌네』 라는 노래를 많이 들어서 그런지, 푸짐한 잔치판을 많이 봐서 그런지 사람들의 기대치도 한없이 많아졌다.
그걸 모두 채우려면 중동 황금경기가 한번 더 와도 될까말까한데 지금 중동에선 옛날 벌었던것마저 되내놓고 있다. 해운·종합사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규모없는 살림 때문에 빚을 너무져 그걸 갚아가야 할 형편이나 오랜 안정화 정책의 반동으로 내몫 요구는 더크니 어찌 경제가 어렵지 않겠는가.
시골 장라벼 물듯 1년에 물어야 할 외채이자만도 40억달러나 된다. GNP의 근 5%다. 또 GNP의 6%를 국방비로 써야한다. 그걸 떼어놓고 몫을 나누어야하니 더 셈에 안차는 것이다.
오늘의 경제문제는 기대욕구와 능력의 벌어짐에서 더 심뢰되는데 어차피 물질적으로 욕구를 채워주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경제문제의 완화는 비경제적 접근이라는 발상이 절실하다. 그것은 상당한 정치적 경단과 도덕성을 필요로 하는데 그쪽은 실현 가능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더 어려울지 모른다.
우선 훈장제도등을 재정비하는 것이다. 훈장으로 대표되는 영예는 인간의 대표적인 욕구의 하나인데 훈장이 너무 남발되는 바람에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요즘은 사람의 평가기준도 물질적으로 크게 기울어 아파트 평수나 자동차 등급 등으로 따지고는 한다.
명예·권력·돈의 분립과 상호견제가 필요하다. 2000년대에 1인당 GNP가 5천달러가 되면 만사가 형통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나 5천달러 시대가 되면 그땐 그때의 문제와 불만이 생길 것이다. 따라서 2천달러시대에 사는 지혜를 익혀야 한다. 물질적 가치외에 명예같은 다른 가치도 있다는 것을 공인하고 실천해야 한다. 따라서 중인환시리에 불쑥 아파트 한채씩을 준다든지 금일봉을 준다든지 하는 일은 안 좋다.
정말 훈장같은 것을 큰 명예로 생각하게끔 권위를 높여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프랑스의 「레종 도뇌르」의 예를 빌것도 없이 옛날 우리 조상들도 청백리나 홍살문·열녀정문등으로 명예보상을 했다.
다음은 문화창달에 더 관대해야 한다. 60년대만해도 기본 수요의 충족에 감지덕지 했으나 이제 더 고상한 것을 바라게 되였다.
문화적 갈증이 심해졌다. 흔히 문화창달이라면 동양최대의 문화전당을 짓고 꽃달고 「테이프 커팅」하는 것으로 충분히 해주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진짜 필요한 것은 문화에 대한 관용과 이해다.
TV드라머 『설중매』가 왜 인기였는지, 요즘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이 왜 그토룩 읽히고 있는지, 김지하의『대설 남』 과 이문열의 『영웅시대』가 왜 화제가 되는지를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얼마전 TV코미디를 싹 쓸어버리고『풍난』을 중단하려던 발상으로 어띠 다양한 문화적 욕구에 대응할 수 있겠는가.
좀 가슴이 아프더라도 풍자도 당하고 만화에도 이상하게 그려지는 걸 참아야 불황에서 오는 울분이 완화 될 것이다.
그것이 정치적 안전밸브 역할도 한다. 그런 문제를 겁내다보니 없는 외화써가며 프로선수 데려오고, 잔치벌이고, 운동경기 위성중계하느 비싼 행사를 해야하는 것이다. 문학·연극영화·대중가요 같은 성자원적인 욕구충족 방안을 더 적극적으로 계발할 단계가 되었다.
얼마전 대학로에 「풍류마당」인가를 만들었는데 문화적 수요는 계속 높아갈 것이므로 그런 방향으로 욕구들 유도해 가는 지혜와 뒷받침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아주 사소한 일인것 같지만 『좋아졌네』 같은 분수없는 노래를 삼가토록 해야 할 것이다. 『좋아졌다』는 합창을 들으면 우리의 저지를 착각할 뿐 아니라 상대적 빈곤감을 더 느낀다.
우리나라에 경제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지 불과 20여년 밖에 안되는데 그렇게 갑자기 좋아질 수가 없다. 아직은 더 고생해야 한다.
1인당 GNP가 1만달러에 가까운 경제 우등생 일본과 비교해 보아도 우리의 살림 규모가 너무 허황하다.
따라서 좋아졌다는 합창으로 최면을 걸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는 빚이 많다』 는 생각읖 잠재의식 소에 심어 우려 처지에 맞게 살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거기엔 예외가 없어야 한다. 우리의 경제문제는 경제적으로 해결하기엔 너무 어려운 형편에 있는 것이다. 최우석 <편집국장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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