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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자 방담-민한 붕괴 과정과 앞으로의 정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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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4년간 이 나라 제1야당이던 민한당이 너무 허망하게 무너졌습니다.
-앞다투어 탈당하는 사태를 보면 무슨 공황이라도 일어난 것 같았어요.
-그래요. 3일과 4일의 탈당사태를 보면서 야당의 어떤 사람은 사이공 최후의 날을 회상하더군요. 주월미대사관건물옥상의 마지막 헬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월남 패망자들의 모습이 생각난다는 거예요.
-3일 상오 탈당 1진이 신민당사에 도착해 마침 내리는 비를 피하기 위해 허둥지둥 뛰는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도 들만해요.
-도대체 민한당이 왜 이렇게 무너졌을까요.
-한마디로 민한당의 존재논리가 2·12선거로 무너진데다 김영삼·김대중씨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죠.
-조윤형 총재가 회견에서 지적했듯이 두 「호메이니」의 재촉도 재촉이었지만 그렇게 허둥대는 모습은 민한당 자체의 콤플렉스에서도 다분히 나온 것 같아요.
-지난 선거에서 두 김씨의 회오리바람을 경험해본 당선자들에겐 두 김씨 우산 밑으로 좋든, 싫든 들어가야 살아남겠다는 절박한 심리들이 있습니다.
-12대 국회가 오래갈까 하는 야당가의 회의론도 한 원인일 것이라고 한 여당인사가 분석하더군요.
-조총재가 현실인식을 제대로 못하고 안일하게 대처한 것도 큰 원인의 하나지요.
-조총재는 1일 낮 측근들과 점심을 먹다가 본지의 20여명 탈당움직임이라는 머리기사를 보고서야 비로소 몇 군데 알아보고 같은 시간 회동한 범주류의 이탈움직임을 그제서야 알아챘다는 거예요.
-조총재가 무조건 항복선언을 했는데도 두 김씨가 그렇게 몰아 붙인데 대해서는 비판도 없지 않아요.
-김영삼씨의 제1목적은 제5공화국의 다당제구도란 기본정치 틀을 깨는데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과거 통일당과의 합당교섭이나 유신말기 변정일씨 등 무소속 당선자들의 영입교섭 때 시간을 끌다 외부 입김이 들어와 하루아침에 돌변한 경험도 있어 이번에는 처음부터 여유를 주지 않기로 작정했다는 것이지요.
-이에 비해 김대중씨는 좀 온건했지만 그 역시 시간을 끌면 안 된다는 인식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만 김대중씨는 민한당 측 인사들을 포섭하겠다는 뜻도 있어 다소 유연성을 보인 것이지요.
-조총재가 3일 일방적 합당을 선언하고 두 김씨를 방문해 동교동에서는 30여분, 상도동에서는 5분 정도 머물렀는데 아무래도 조총재는 동교동과 좀 가깝다고 봐야죠.
-야당가에서는 민한당 전당대회에서 두 김씨 진영이 가벼운 1차 대결을 했고, 이번 사태에서 2차전을 했다고 해요.
-상도동 측 탈당자수가 많으면 동교동 측이 망신할 우려가 있다는 논리가 있었죠.
-민한당 측 탈당자들의 처신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탈당자들 서로가 서로를 헐뜯고 있어 가관이더군요. 조총재 측이나 수권위파들은 체제정비를 고창하던 범주류가 먼저 튄 것에 대해 혹평했지만, 범주류의 황낙주, 유한열씨 등은 조총재가 지난 며칠사이 3번이나 태도를 바꿨다고 비난했지요.
-3일 신민당총재단은 유한열씨가 입당키 위해온다는 첩보를 받고 어안이 벙벙했다는 후문입니다.
-한마디로 염량세태를 보는 기분입니다. 당선자들의 지나친 실리추구자세에 비판이 쏠리고 있어요.
-이념이 뒷받침되지 않은 채 사람중식으로 이합집산을 거듭해온 야당가의 병폐 집중적으로 표출된 것이 아닌가해요.
-범주류의 전격이탈은 좀 심했다는 지탄을 면할 수 없지요.
그러나 조총재도 아무런 이탈방지 노력 없이 훌렁 나몰라라는 식으로 집어던진 것은 공인으로서 취할 태도가 아니라는 말도 나와요.
-탈당서명을 했다가 반나절만에 번복한 범주류의 P, C씨나 수권위파들의 행동결속 다짐을 깨고 3일 먼저 탈당을 결행한 모모씨 등에 대해 동료들은 서운한 감정을 감추지 않고 있더군요.
-이런 북새통에도 부총재를 주면 이틀치 않겠다고 한 인사도 있었다고 조총재는 개탄하더군요.
-잔류파가 서너명 될까요.
-당선자 중 유치송 전 총재와 그 측근인 손태곤, 신동준씨 정도지요. 유씨는 원외위원장들의 처리문제가 끝나고 나서 경계은퇴, 또는 신민당합류를 고려하는 모양입니다.
-손씨는 두 김씨가 이끄는 대열에는 절대 동참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형식상 민한당 간판은 남는다고 보아야지요.
-그렇습니다. 일부 원외의 고수파도 있고 현실적으로 당사전세보증금 2억원, 현금재산 5천만원, 경북도지부건물이나 국고보조금 중 득표율로 배분되는 40% 중에서 민한당이 차지할 수 있는 19%도 있고 잔류에는 적지 않은 실리도 있어요.
-민한당의 이탈행진은 사실상 4일로 매듭될 것 같은데 다음으로 국민당에서는 몇 사람이나 너 이탈할 것인지 궁금합니다.
-제3의 원내교섭단체의 성립이 가능하냐는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에 국민당 측의 움직임이 민정당 측의 큰 관심사입니다.
-두 김씨가 신민당사를 방문했을 때 민한당이든, 국민당이든, 또 과거 그가 무얼 했느냐에 관계없이 민주대열에 동참하겠다는 사람이면 다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지요. 두 김씨는 내막적으로 이미 국민당 당사자들에게도 손을 뻗치고 있어요. 4일 이미 김완태, 조병봉씨가 입당했잖아요.
-양측이 집중적으로 지역연고 등을 내세워 파고 물고 있는데 이봉모 의원이나 신민선씨 등은 시간문제라는 얘기입니다.
-민정당이 민한당 붕괴에 대해선 대세로 보고 체념상태로 보고만 있었으나, 국민당 일부 이탈소식에는 충격을 받았다는 얘기입니다.
-양정규, 김효영·이용택씨 등 무소속당선자 중에서도 양씨와 김씨는 신민당 쪽에 기울고 있다고 해요.
-결국 양대당중심의 정국운영은 필연적 사실이군요. 야권세력이 두 김씨 통제하에 들어감으로써 더 강경노선을 지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지 않습니까.
-실제 그 우려가 큽니다. 이중재씨 같은 이도 『뭐가 급박하게 흐르는 것 같다』고 불안감을 토로할 정도입니다.
-정부,여당도 내막적으로는 바짝 긴장하고 있어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국민들이 불안한 느낌을 갖고 특히 정치동향에 민감한 재계가 움츠러들고 하면 사회전반에서 안정희구세력이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여당권인사도 있습니다.
-이종찬 민정당총무도 양당체제가 온다, 대비해야 한다고 걱정은 하지만 여당권의 이에 대한 대책은 아직은 세워지지 않은 것 같아요.
-여당 측의 은근한 또 다른 걱정은 신민, 민한당의 통합으로 신민당 측이 지난 선거득표율을 합산해 49%가 1백여 석인데 33.5%를 얻은 민정당이 1백48석을 차지한 것은 부당하다고 들고 나오면 어떻게 하느냐는 거예요.
-유신말기 10대 선거 때 구신민당이 공화당보다 1.1% 더 득표해 일어난 분위기가 재현될까하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신민,민한당의 득표율을 산술적으로 합산해 비교하는데는 무리가 있어요.
-신민당 안에도 이제부터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는 얘기가 많아요.
과연 잡다하고 이질적인 요소들로 채워진 이 대세력을 적절하게 관리하고 통제할 능력이 현지도부에 있느냐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어요.
-행동통일이나 의사집약에 무리가 올 것이고 특히 선거열기가 가셔질 시점이 되면 각자의 이해는 물론 각파의 이해상충도 예각화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특히 두 김씨 세력의 회전에 대비한 조직적 움직임도 나오지 않을까요.
-일부에서는 두 김씨가 존재하는 한 통제에는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봅디다만 두 김씨인들 일일이 개입하기도 어렵겠죠.
-민한당의 대거입당으로 이철승씨 등 비민추의 비중이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와요. 이씨는 『현 정치흐름은 일과성의 회오리바람이고 회오리에는 먼지가 끼어 들게 마련』이라면서 국회가 열리면 민생문제도 생각해야할 것이고 또 두 김씨의 원론에만 항상 매달릴 수는 없을 것이라는 얘기를 해요.
-하여튼 야권통합으로 기세가 높아진 신민당이 강경노선의 고수위로 밀고 나가면 정국경화는 필연적이고 이에 경제난국까지 겹치면 문제는 한층 복잡해집니다.
-신민당 내부의 조화 및 노선설정문제, 두 김씨 산맥의 잠재적 대결불씨, 이에 대응하는 정부 여당의 자세 등이 앞으로 정국동향을 가름하는 큰 변수들인데, 5월초 열릴 임시국회를 지나봐야 뭔가 감이 잡히겠지요. 산너머 산일지 앞으로 더 잘 지켜봅시다.<정리=이수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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